지난 6일 찾아간 서울 시내 마을버스 노선 종점 인근 간이 화장실. 권도현 기자

지난 6일 찾아간 서울 시내 마을버스 노선 종점 인근 간이 화장실. 권도현 기자

“쉬는 시간? 전혀 없어요. 그게 불만이에요. 시내버스는 많이 좋아졌다는데….”

지난 6일 만난 서울 관악구 마을버스 기사 ㄱ씨는 평소 휴게시간에 대해 묻자 이렇게 하소연했다. 그는 “오후에는 평균 11시간 정도 근무를 하는데 쉬는 시간이 단 10분도 없다”며 “휴게할 시간도 적지만 휴게 공간이라봐야 풀숲 옆 간이화장실뿐이다. 하루 운행하면 녹초가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9일 경부고속도로 졸음운전 사고 이후 광역버스 기사들의 장거리 운행과 불완전한 휴게 실태에 관심이 쏠렸고 연속 휴게시간 연장 및 경기 광역버스 준공영제 도입 등 관련 대책이 잇따라 발표됐다. 그러나 마을버스도 법으로 정한 휴게시간과 시설을 보장받지 못해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서울시가 25개 자치구 중 21개구 115개 운수사의 마을버스 노선을 대상으로 지난 4월28일~6월9일 실시한 휴게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총 201개 노선 중 휴게실을 보유한 노선은 177개였다. 그러나 이 중 114개 노선은 휴게실을 갖추고도 실제 이용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 2월28일 공포·시행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운수종사자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운전자 휴게실 및 대기실에 의무적으로 냉·난방 장치, 음수대 등 편의시설을 설치·운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어긴 운수회사는 최장 15일간 사업정지를 당하고 과징금 60만원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기사들이 휴게시설을 실제 이용하는 서울 마을버스 노선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101개 노선의 경우 휴게실이 기·종점과 500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개 회사가 여러 노선을 운영하고 있지만 노선별로 휴게실을 마련할 여력도, 법적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왕복 1㎞ 이상을 이동하는 대신 버스 안에서 쉬길 선택하는 것이다.

또 73개 노선의 경우 음수대와 에어컨 등 편의시설이 부족했다. 운수회사의 차고지와 관계없는 다른 건물에 휴게실을 설치한 경우도 있었다. 금천구의 한 마을버스 노선은 종점 인근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빈 사무실을 휴게공간으로 썼다. 그나마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관악구에 있는 아파트 단지 상가에 금천구 버스 기사가 쉬는 것이 말이 되냐”며 항의해 노선 기사들은 휴게실 대신 근처 학교 앞에 차를 세워 그 안에서 쉬고 있다. 그나마 학교가 개학하면 이마저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을버스 기사들은 휴게시간도 부족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 2월 발표한 ‘서울 마을버스·셔틀버스 기사의 노동실태와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식사·대기시간을 뺀 마을버스 운전사의 하루 실질 휴게시간은 9.5분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오전에 평균 8.6시간, 오후에는 10.2시간을 근무했다. 노선을 1차례 운행하는데 평균 52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에 노선을 20회 가량 운행하는 셈인데, 실질 휴게시간은 1회 운행당 1분에도 못미친 것이다. 반면 마을버스 기사들 중 71%는 회사가 한달 만근 일수(기본 근무일수)를 26일로 잡고 있다. 이는 시내버스 기사들의 22일보다 많다.

이 상황은 시내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마을버스 회사의 사정 탓이 크다. 서울 시내버스에는 준공영제가 도입돼 운수회사의 적자분 일부를 시에서 보전하지만 마을버스의 경우 시가 노선 관리하고 일부 지원금을 줄뿐 적자 보전은 하지 않는다. 반면 기사들은 문제제기를 하지 못해 회사는 투자에 인색하다. ㄱ씨는 “경력을 쌓아 시내버스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목표인데, 시내버스 회사가 전 직장(마을버스 회사)에 과거 평판을 물어본다고 해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사들의 피로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2012~2013년 서울 시내버스의 교통사고지수(사망·중상·경상자에 가중치를 둬 계산한 수치를 차량대수로 나눈 값) 0.567, 0.579를 기록한 반면, 마을버스는 교통사고지수가 0.617, 0.769에 이르렀다. ㄱ씨는 “운행 구간에 차선이 좁아 운전이 힘들다. 그 구간을 몰다가 동료 기사가 올해 초 사망사고를 냈다”며 “안전 의무는 기사가 지켜야 하긴 하지만 내 몸에 피로가 쌓이면 지키기가 힘들다”고 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강원버스지부는 “서울시 차원에서 전체 마을버스 노선이 휴게시간을 준수하는지 단속과 정기적 감독을 실시하는 한편 시 차원에서 마을버스 기사들이 공용으로 쉴 수 있는 휴게시설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이달 내로 ‘마을버스 노동자에게 10분의 휴식을 만들어주자’는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윤승민·권도현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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