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강남 3구 가구당 평균 매매가 10억원 웃돌아… 정부 부동산 띄우기 영향
서울 강남지역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아파트 매매가가 꾸준히 오르더니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가 사상 처음 6억원을 돌파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는 가구당 10억원을 웃돌았다. 박근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의도적으로 부동산 띄우기에 몰입한 결과다. 지방 광역시를 중심으로 시작된 주택 매매거래 활성화가 수도권으로 이어지고,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바람을 타고 강남으로 쏠린 모양새다. ‘빚 내서 집 사라’는 기조 속에 서민·중산층은 주택 구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가, 각종 정책대출이 일시적으로 중단되며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큰돈을 들일 수 있는 투기꾼들만 웃고 서민들만 선택의 폭이 줄어든 것이다.
부동산시장 조사기업 부동산114에 따르면, 10월 14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구당 평균 매매가는 6억647만원이었다.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 말의 5억1849만원보다 8798만원이 올랐으며, 이전 고점인 2009년 말의 5억8847만원보다도 약 1800만원 많다. 강남 3구만 놓고 보면 가구당 평균 아파트 매매가가 10억8609만원까지 올랐다. 박근혜 정부 첫해(2013년 말)의 8억7473만원보다는 무려 2억1136만원이나 올랐다.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였던 2006년 말의 10억4769만원보다도 높다.
최근의 아파트 매매가 폭등은 강남지역에 국한돼 있다. 수도권 외 지방 부동산시장의 아파트 매매가는 이번 정권 들어 대구 등 광역시를 중심으로 한때 올랐으나 지금은 ‘부동산시장 양극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얼어붙었다. 장기화된 초저금리 현상으로 투자처를 잃은 돈들이 강남 부동산시장에 몰려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남에서 비롯된 아파트 매매가 광풍이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가격 폭등에 대한 우려도 높다.
서울 강남의 개포주공 3단지에서 올해 8월 재건축을 위해 철거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 이곳을 비롯해 강남 3구가 최근 투기성 부동산 값 폭등의 진원지가 됐다. /이석우 기자 |
큰돈 들일 수 있는 투기꾼들만 웃어
강남지역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2014년 재건축 가능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고 재건축 초과 이익환수제를 3년간 유예한 것은 강남 아파트들의 재건축과 고액 분양권 거래의 문을 열었다. 그해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모두 상향된 해이기도 했다. 2013년에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양도세 한시적 면제, 주택 취득세율 인하가 발표됐다. 다주택자들이 투자 및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
지난해에는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이 단축됐다. 수도권의 경우 1년에서 6개월로 줄었다. 수도권 청약 1순위 자격도 ‘가입 후 2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분양권을 사고팔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도 폐지됐다. 부동산경기를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던 정부 경제팀의 복안이 차근차근 진행돼온 것이다.
효과는 확연했다. 지방에서부터 수도권까지 순차적으로 분양시장이 달아올랐다. 지난해 1년간의 주택거래량(119만여건)과 아파트 분양물량(62만여가구)은 통계를 공식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최대치였다. 재건축·재개발 바람이 불던 지난해 말부터 강남지역 재건축아파트 중에는 3.3㎡당 4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하더니 올해 10월 초 기준으로는 평균가격이 4000만원을 넘겼다.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서울 강남권에서 분양권 전매제한이 풀린 10개 아파트 단지 2782가구 중 31.6%인 880가구나 분양권 전매가 이뤄졌다. 이 가구의 분양권 전매차익은 178억3152만원, 가구당 2026만원에 달했다. 부동산시장의 활황이 차익을 노리는 투기의 장을 만든 셈이다.
다만 부동산시장을 띄우겠다는 의지를 보인 정부도 올해 하반기까지 강남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것은 크게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최근까지 이어진 폭등은 올 초까지 꾸준히 활성화된 아파트 재건축·재개발뿐 아니라 지난 8월 25일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여파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 규모를 줄이겠다는 내용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졌다. LH는 올해 택지 공급을 줄이기로 이미 지난 3월 발표했고, 이날 가계부채 관리방안에서 발표한 공급량 감소분은 LH의 3월 발표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는 “가계부채에서 주택자금 마련을 위한 대출 비중이 많다고 보고, 주택 공급을 줄여 부채규모를 줄이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오히려 주택 공급 감소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 이후 가격 상승을 일으켰다. 특히 강남지역 등 희소성이 부각된 지역의 주택 매매가격 상승폭이 컸다. 부동산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을 강화하는 내용이 이 시기에 발표될 가능성도 거론됐으나 대책에서는 빠졌다.
서민·중산층 등 주택 실수요자들이 집을 사기는 더 어려워졌다. 서민들의 대표적 주택담보대출인 ‘보금자리론’ 취급이 일부 서민층을 제외하고 연말까지 중단됐다. 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대출 보증 비율도 100%에서 90%로 줄었다. 시중은행들도 중도금 집단대출 심사 강도를 높였고, 이로 인해 금리가 상승해 대출부담도 늘었다. 강남지역 주택가격 폭등이 주변 수도권 지역의 시세도 올릴 수 있다는 부담감마저 떠안은 상황이다.
서민 등 실수요자들 집 사기 어려워져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정책 활성화 기조와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관리하려는 금융당국의 의도가 부딪히며 이런 일이 벌어졌다. 시장의 저금리가 길어지는 동안 ‘전세의 월세화’는 가중되고,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 구입자금 대출상품 금리는 떨어졌다. 서민·중산층 실수요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전셋값을 올려내거나 월세부담을 안아야 했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야 했다. 주택시장은 활황이었지만 가계부채는 늘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가계신용 잔액)가 1000조원이 넘은 것은 2013년 4분기, 11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2분기다. 그러나 1200조원을 돌파한 것은 다시 반 년 정도가 지난 지난해 4분기였다. 다시 반년 만인 올해 2분기에는 54조원이 더 늘어나는 등(1257조원)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빨라졌다.
부동산시장 활황을 통한 경기 부양을 원한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과 가계부채 관리를 원한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은 계속 불협화음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에서 의도와 다르게 가격 상승을 부추긴 ‘주택 공급 축소’ 시그널은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갈등이 강남 부동산 가격 폭등을 계기로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기재부·국토부 입장에서는 3%대 경제성장률 도달 목표를 이루기 버거운 한국 경제의 지표를 그나마 견인해온 부동산시장이 냉각되면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두렵다. 대선을 1년 정도 앞둔 상황에서 경제지표 하락은 민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부동산시장 활황과 함께 늘어났던 주택 인·허가 물량이 내년부터 완공돼 입주를 시작할 때 예상되는 미분양 등의 문제를 계산한다면 부동산시장 규제를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내 1300조원을 돌파할 기세로 늘어나는 가계부채도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부담이라 부채 관리를 위한 각종 규제가 예상된다. 그동안 주택가격 상황을 진단하고 논의해야 할 부동산가격안정협의체는 부동산시장이 나쁘지 않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권 이후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컨트롤타워’의 부재 속에 새로 집을 구하는 서민·중산층의 고심만 깊어져가고 있다.
<윤승민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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