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부, 한옥 건축 기준 첫 제정

김모씨(44)는 10여년간 아파트 생활을 해오다 지난해 서울 중북부 지역의 한옥을 구입했다. 빈집을 수리해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관할구청에서 “기준이 애매해 한옥으로 건축 허가를 내주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명한 것이다. 당시 주택은 ‘목조건물’로 표기돼 있지 않았다. 구청은 서류 검토 결과 주택을 한옥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건축업체와 함께 다른 지자체의 기준을 구해 구청을 설득한 끝에 겨우 허가를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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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옥 건축물 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56만4720채에 달한다. 건축물대장상 기와지붕과 목재 구조로 돼 있는 건축물은 한옥으로 분류돼 있다. 최근 북촌, 서촌과 전주 한옥마을 등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는 등 한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보조금·지원금 및 세금 감면 혜택을 주면서 한옥 신축도 늘어나고 있다. 2008년 648건이던 한옥 신축건수는 2009~2014년 연평균 932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한옥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어 자치단체별로 규정이 제각각이었다. 최근 한옥 개·보수 시의 규제가 완화됐는데도 지자체에 따라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정부가 이처럼 그간 애매모호했던 한옥에 대한 ‘건축 매뉴얼’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는 21일 ‘한옥 건축 기준’을 제정해 다음달 10일까지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한옥의 건축 기준을 정한 것은 처음이다.


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한옥의 주요 구조에는 목재를 사용해야 한다. 목재 부재(골조의 구성요소)는 외부에서 잘 보이도록 지어야 한다. 다만 부득이하게 목재 대신 철골 등을 사용해야 할 경우에는 15개 이내만 사용하도록 했다. 

지붕은 암키와·수키와로 이뤄진 한식기와를 써야 한다. 처마의 가장 바깥 부분을 잇는 가상의 선인 ‘처마선’과 외벽 기둥 중심까지의 거리를 ‘처마깊이’로 정해 최소 90㎝(3척)가 되도록 했다. 한옥의 정체성을 살리고 목재 부식 방지와 일사량 조절 등을 위해서다. 다만 서울 도심 지역 등 한옥이 밀집돼 처마깊이를 확보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조례로 별도 기준을 둘 수 있도록 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인접 대지에 피해를 줘서도 안된다. 건물 외벽은 기둥의 바깥면보다 안쪽으로 들여 설치하도록 했다. 다만 벽돌 등으로 화방벽(火防壁·방화 성능을 높인 벽)을 설치할 때는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담장 높이는 처마선 높이 이하로 정했다. 외부에서 한옥의 처마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한옥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제정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6월 시행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후속조치이기도 하다. 법안은 목조 기둥을 3개 이상 수선할 때 받아야 했던 건축허가를 개수와 상관없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또 처마 아래에 설치하는 공간은 건축면적에서 제외하는 등 규제를 상당 부분 풀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한옥의 기준이 명확지 않아 각 지자체가 임의대로 기준을 정하는 탓에 혼선을 빚고 있어 한옥 건축기준을 새로 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행정예고 기간에 홈페이지, 우편 등을 통해 의견을 받아 기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