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쌀소비 계속 줄고 쌀값 하락
ㆍ‘식량 안보’ 자급률 확보 필요
ㆍ소량 감산·용처 확대가 대안
ㆍ정부, 묵은 쌀 사료화도 검토

‘풍년의 역설’

올해 쌀농사에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수확량은 늘었지만 소비량이 줄어 재고가 불어나는 바람에 쌀값이 하락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이 예상한 올해 쌀 생산량은 2009년 이후 최고치인 432만7000t입니다. 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65.1㎏으로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 쌀 재고량도 130만t이 넘어서는 등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쌀 소비량 감소는 수십년째 계속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가격 안정화를 위해 농가들이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농민들이 다른 품목을 재배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데다 정부도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쌀정책 토론회에서 이효신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은 “정부와 정치권은 수요·공급 문제를 들어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라고 한다”며 “그러나 다른 작물도 외국산 때문에 가격이 이미 폭락해 선택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작물들은 날씨 등 수급 상황에 따른 가격 변동이 심한 탓에 쌀 농가가 다른 작물을 심을 유인을 느끼지 못합니다. 콩을 비롯한 다른 국산 작물들은 이미 수입 농산물들에 자리를 내준 상황이라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농가들엔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쌀 과잉 생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오고는 있지만 쌀의 대량감산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는 ‘생산조정제’를 통해 쌀 재배면적을 줄이려고 합니다. 논에 벼 대신 콩, 조사료 등을 심도록 하고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현재 79만㏊인 쌀 재배면적을 62만㏊로 줄여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2025년까지 자연감소로 재배면적이 65만㏊까지 줄어들더라도 3만~4만㏊가 추가로 더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드는 1200억원의 재원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쌀 농가들이 “그동안 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서 좋은 게 없었다”며 불신하고 있어 먹혀들지도 의문입니다.

정부가 쌀 대량감산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식량안보’ 때문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쌀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올해까지 곡물 자급률 30%를 목표로 삼았지만 지난해의 경우 24%에 그친 상태입니다. 수해 등으로 쌀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는 만큼 400만t가량의 연 생산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따라서 쌀 생산량을 소폭 줄이는 대신 다양한 사용처를 찾아내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대북지원이나 쌀 수출과 함께 재고 쌀을 사료용 및 주정용으로 돌리자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주정용으로 쓰기엔 국산 쌀은 수입 쌀보다 비싸고, 대북지원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최근 중국에 쌀을 수출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질 좋은 일본, 대만 쌀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만큼 얼마나 수출물량을 늘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정부는 생산연도가 오래된 쌀을 사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