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귀농전문가’ 채상헌 교수 조언

▲ 해외 이민 준비하듯 꼼꼼하게… 농촌현지 문화부터 공부를
지자체도 홍보에만 몰두 말고 초보 귀촌인 ‘정착’ 도와야


“1996~1997년 농사를 지을 때였습니다. 옆집 할머니께 일손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린 적이 있는데 약속한 날에 오시질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밭으로 일을 나가다 일손이 더 필요한 농가를 보시고는 그리 가셨더라고요. 미리 정한 약속부터 지키는 도시 문화와 달리 농촌은 정에 이끌려 움직이더군요.”

채상헌 천안연암대학 친환경원예과 교수(51)는 대표적인 귀농전문가다. 그는 2006년 천안연암대학 귀농센터장을 맡은 이래 지금까지 귀농·귀촌인 약 1만명을 교육했다. 

지난 23일 충남 서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채 교수는 “농사 기술을 못 익혀서 귀농에 실패하는 사람은 없다”며 “귀농도 해외 이민을 준비하듯 농촌현지의 문화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농촌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귀농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귀농전문가 채상헌 교수가 지난 23일 충남 서천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채 교수는 귀농이 성공하려면 3년은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천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 귀농인구 늘지만 갈등도 늘어

귀농인구는 점차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 집계 결과 지난해 귀농·귀촌 가구는 총 4만4586가구로 전년보다 37.5% 증가한 역대 최대치였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늘고 청년층이 농촌으로 사업 기회를 찾으면서 귀농·귀촌은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귀농·귀촌 과정에서 갈등도 늘고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도시인들이 관계를 중시하는 농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큰 문제다. 채 교수는 귀농인들이 토지를 매입할 때부터 갈등이 시작된다며 “도시에서는 법적 소유권 개념이 확실하지만 농촌에서는 합의나 관습, 공동체 편의에 따라 판단할 때가 많다”고 했다. 농번기 때 이웃을 돕지 않고 홀로 산책하거나, 도시 손님들을 초청해 밤늦게 술판을 벌이는 일도 갈등 요인이다. 휴일 없이 밤늦게 일하는 농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귀농인 간 갈등도 늘고 있다. 먼저 귀농한 사람들이 사들인 처치 곤란한 밭·비닐하우스를 후발 귀농인에게 비싸게 처분하는 식이다. 채 교수는 “주민-귀농인 갈등은 시간이 지나고 농촌 문화를 이해하면 극복할 수 있다”며 “하지만 귀농인 간 갈등은 문화 차이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어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 농촌 가기 전 도시에서는 2년 동안 고민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11~12월 귀농·귀촌인 12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귀농·귀촌인 정착 실태 조사’를 보면 귀농·귀촌인 55%가 1년 이상 고민 끝에 귀농·귀촌을 결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채 교수는 ‘2+1년’을 고민하라고 했다. 1년은 ‘내가 왜 농촌에 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시기다. 채 교수는 “농촌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지만, 가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면 금방 극복한다”고 말했다. ‘할 일 없는데 농사나 짓지’ ‘어렸을 때 농촌에 살았으니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태도는 금물이다. 채 교수는 “농촌에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더 잘 정착하는 경우도 많다”며 “경험이 없어 준비가 더 철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1년은 ‘언제, 어디서, 어떤 농사를 할지’ 정해야 한다. ‘고향에 땅이 있으니’ ‘딸기를 키우고 싶어서’만으로 성급하게 내려가선 안된다는 얘기다. 지역이 강원도라면 딸기를 키우기는 어렵다. 기후는 온실로 조절할 수 있다손 쳐도, 주변 농가가 딸기를 키운 경험이 없고 자치단체에도 전문가가 없어 도움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물을 선정할 때는 자신의 적성과 체력도 고려해야 한다. 

■ 1년간은 흙과 땅보다는 사람과 가까이

‘플러스 1년’은 무엇일까. 채 교수는 “농촌에 내려가 첫 1년 동안은 적응하는 시기”라고 했다. 이때는 도시에서 하던 일들을 접고 본격적으로 농촌에 뛰어들 때다. 채 교수는 “보통은 이때 농사에 몰두하는데 절대 농사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일손도 돕고, 농사 기술도 조금씩 익혀야 한다”며 “농촌공동체에 융화되면 농사정보도 인맥도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덧붙였다. 정착할 집을 짓기보다는 빈집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농촌에 집을 얻지 못했다면 석 달에 한 번씩은 내려와 얼굴을 익히는 것이 좋다.

채 교수는 “이미 귀농한 사람들에게 농사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예비 귀농인들이 귀농을 결정하기 전에 정확한 정보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지자체들이 인구를 늘리기 위해 ‘귀농이 좋다’고만 홍보한다”며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하는 것도 좋지만 귀농한 이들이 잘 정착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서천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