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모든, 자기 아이를 얻고 싶다면 얼마가 되든 (돈을) 내려고 하지 않을까?” 태국 방콕 슬럼에 사는 와사나(32)는 2012년, 인터넷에 뜬 ‘대리모 광고’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대리모가 된다면 1만달러(약 1000만원)를 벌 수 있다는 말을 와사나는 지나칠 수 없었다. 쓰레기가 쌓인 슬럼에서 태어나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와사나는 음식 노점상을 하며 하루 평균 6달러(약 6100원)를 벌었다. 8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살만하긴 했다. 아버지가 입원해 병원비를 대야할 상황이 오기까지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와사나가 대리모가 된다면 불과 9개월만에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와사나는 그렇게 대리출산을 중개해주는 병원을 찾았다. 다만 “외국인 커플이 요청했다”는 답변만 들었을 뿐, 누가 무슨 이유로 대리출산을 요청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임신을 하면서 경련과 고혈압에 시달렸다. 출산을 두 달 앞뒀을 때는 응급실에도 실려갔다. 다행히 지난해 6월20일, 와사나는 재왕절개로 아들을 낳았다. 가족들이 출산을 마친 와사나를 찾았다. 그러나 아이의 생모는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두 달이 지나서야 와사나는 대리출산 의뢰인을 만났다. 주름진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일본인 남성이었다.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대리출산 병원을 찾은 이 남자가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와사나는 떠올렸다. “그는 자기 소개도 하지 않은 채 미소지으며 고개만 끄덕였어요. 필요한 말은 변호사가 다 했구요.” 와사나는 “내 난자가 쓰인 건지, 다른 여성의 난자를 쓴 건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일본인 남성에게 안긴 아기가 자신의 자녀인지 아닌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일본에 있을줄만 알았던 와사나의 아이는 지난달 5일 방콕의 한 콘도미니엄에서 발견됐다. “어디선가 아이들 울음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들은 경찰이 콘도미니엄 방 안에 있는 9명의 아기와 9명의 유모를 발견한 뒤였다. 경찰은 이후 아파트의 소유주이던 시게타 미쓰토키(24)를 조사했고, 유전자 검사 끝에 그가 각자 다른 여성에게서 16명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와사나는 경찰이 가장 먼저 ‘시게타의 대리모’로 확인한 사람이다.
태국 당국은 ‘시게타가 왜 태국에서 많은 아이를 낳았는지’ 조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게타가 인신 매매를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시게타는 이를 부인했다. 병원 측은 “시게타는 선거에서 이기고 싶어했고, 그만큼 대가족이 필요했다고 말했다”며 “그는 죽을 때까지 한달에 10~15명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시게타가 세금을 줄이기 위해 해외 출산을 시도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외국인에게 부과되는 세율이 더 낮다.
시게타는 경찰 수색 이틀 뒤인 지난달 7일 태국을 떠나 일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통신업체 ‘히카리 통신’의 설립자 시게타 야스미쓰의 아들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시게타는 인신 매매 혐의를 부인했을 뿐, 왜 이렇게 많은 아이를 낳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태국 경찰은 인터폴과 공조해 시게타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 인터폴은 일본, 태국뿐 아니라 캄보디아, 홍콩, 인도에도 공조 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태국에서 지난달 대리모 문제는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달 호주 대리모가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 ‘가미’의 입양을 거부한 데 이어, 대리모 아이를 대량 출산한 시게타의 이야기가 큰 문제로 비화됐다. 태국 정부는 지난달 13일 ‘상업적 대리모 금지 법안’을 승인했고, 동시에 태국 내 대리모들의 본국 귀국을 막았다. 와사나는 자신이 낳은 아들의 친엄마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시게타)가 아들을 사랑해주고, 좋은 가족을 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AP통신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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