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딸 키우면 돈만 든다’ 인식… 영아 살해·교육 대신 조혼
ㆍ남성 중시 관습·신분제 탓에 성노예·가정폭력도 정당화

칼리야니는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에 사는 12살 소녀다. 하지만 칼리야니는 태어나자마자 자칫 부모 손에 죽임을 당할 뻔했다. 어머니 아쇼다가 칼리야니까지 포함해 연달아 세 번 딸을 낳았기 때문이다. 친척들은 “부정을 탔다”며 아쇼다를 집에서 쫓아내려 했고, 궁지에 몰린 아쇼다는 아기를 버리려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행히 버림받지 않은 채 가족들 사이에서 자라고는 있으니, 칼리야니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화장실이 없어 들판에서 용변을 보던 인도의 ‘달리트’(불가촉천민) 소녀들이 얼마 전 집단성폭행 뒤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최근 인도에서 잇달아 엽기 성폭행 살해사건이 일어나면서 인도 여성들의 현실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인도 여성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극심한 성차별과 폭력을 겪어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어떻게 살까’보다 ‘살 수 있을까’가 더 큰 고민거리인 것이다. 월드비전 등 구호단체들의 보고서와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인도 여성들이 일생 동안 겪어야 하는 수난들을 들여다본다.

“여성 성폭행 더 이상은 안돼” 인도 여성인권 운동가와 학생단체 회원들이 지난 2일 웨스트벵갈주 콜카타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해 최근 인도 전역에서 발생한 여성 성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콜카타 | AP연합뉴스



■ 영아 살해

보수적인 농촌지역인 펀자브주에서는 여아 100명이 태어날 때 남아 123명이 태어난다. 부모들이 딸로 확인될 경우 낙태를 하거나, 갓난 딸을 죽이는 영아 살해가 드물지 않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성별을 이유로 살해하는 것을 ‘젠더사이드’라 부르는데, 인도는 특히 심각하다. 아들은 가족을 부양하는 기둥이지만, 딸은 키우는 데 돈만 들어간다는 인식 때문이다. 결혼할 때 신부 지참금을 주는 풍습 때문에 딸을 골칫거리로 여기는 부모들도 있다. 딸에 대한 교육투자도 적다. 딸을 가르치는 것은 ‘남의 밭에 물주기’라 여긴다. 가난 때문에 아들조차 교육시키기 힘든 농촌에서 딸을 가르치는 것은 낭비로 여겨지기 일쑤다.

■ 교육 대신 조혼

일찍 시집보낼수록 신부 지참금을 조금 줘도 되고 ‘먹일 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조혼을 시키는 풍습도 남아 있다. 현행법상 18세 미만은 결혼이 금지돼 있으나, 그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소녀들이 500만~600만명으로 추산된다. 교육받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학력을 쌓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이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받지 않은 어머니는 딸에게 권리를 가르치지 못하며, 교육받지 않은 여성은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어 남성에게 의존해야 한다. 여성이 천시받는 구조는 이렇게 대물림된다.

■ 인신매매와 성노예

동부 벵갈에 사는 디아는 13살 때 쇼핑을 하러 가자던 이웃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 후 2년간 디아는 이 아주머니 손에 이끌려 성매매를 해야 했다.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오히려 가족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더러운 여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배운 것이 없고 기댈 곳을 잃은 여성들은 성매매와 인신매매의 늪에 빠지기 쉽다. 소녀들은 델리, 뭄바이 같은 대도시는 물론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등 주변국에 성노예로 팔려간다. 월드비전은 인신매매 뒤 성노예로 살아가는 12~16세 인도 소녀가 1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 가족 내 폭력

결혼한 여성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남편이나 남자 친척이 여성을 살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신분이 낮을수록 위험에 더 노출된다. 지난 11일 우타르푸르데시주에서는 44세의 달리트 여성이 성폭행 후 나무에 매달린 채 발견됐다. 10대 소녀들 사건 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성폭력 문제를 개탄했지만, 아랑곳없이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교육과 직업선택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들은 성차별과 카스트에 얽매여 살고 있다. 이들에게 경찰력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1월 콜카타의 16세 소녀가 성폭행을 당한 뒤 숨졌다. 경찰은 소녀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발표했으나,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범인들에게 살해된 사실이 드러났다. 집권 인도국민당의 한 간부는 최근 “성폭행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