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숏드라마 ‘집밥 이야기’

“침체된 영화계에 돌파구 마련 위해 도전

처음엔 두렵고 불편했다”

세로 화면, 오히려 인물 내면 깊게 조명

집밥 먹는 잔잔한 이야기, 오히려 ‘숏폼 경쟁력’

“자극의 시대, 뻔함의 미학이 소중하다”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 레진스낵 제공

 

21년 전 영화 <왕의 남자>로 ‘천만 감독’ 반열에 올랐던 이준익 감독은 올해 쇼트(숏)폼 드라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 기존 장편 영화의 반대편에 있는 매체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세로로 긴 휴대전화 액정에 맞춘 화면 비율, 약 2분 안에 기승전결을 갖춰야 하는 극 구성. 9일 서울 성동구 키다리스튜디오에서 만난 이 감독은 숏드라마 도전이 “불편하고 두려운 선택이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면 나에게 좋을 건 없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그가 숏드라마에 도전한 이유는 침체된 영화계에 몸소 돌파구를 뚫어보기 위해서다. 이 감독은 “젊은 연출자들이 상업 영화에 데뷔할 기회가 줄었다”며 “후배들에게 숏폼 시장이 상업 시장에 진입하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도전하라고 응원했지만 돌아온 답은 ‘숏폼이 아직 마이너 취급을 받는다’는 말과 ‘이름 있는 사람이 숏폼을 만들어주면 힘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후배들과 함께한다는 게 의미가 있지 않나”라며 숏폼 도전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중국과 미국 등에서는 숏폼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감독은 “숏폼은 영화의 하위 매체가 아니라, 넷플릭스에 대한 대응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숏폼 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에서 공개될 <아버지의 집밥>이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신설된 ‘숏폼 시네마’ 부문에 초청됐고, 9일 롯데시네마에서도 개봉했다. 휴대전화를 넘어 대형 스크린에서도 세로가 긴 화면으로 상영되며, 짧은 에피소드를 이어붙여 2시간30분 분량이다. 이 감독은 “에피소드를 붙이면 지루할까 봐 걱정됐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몰입이 되더라”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의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 한 장면. 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버지의 집밥>은 갑작스레 요리하는 법을 잊은 아내 대신, 평생 한 적 없던 요리를 시작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 드라마다. 눈길을 끌 만한 자극적인 콘텐츠가 많은 여타 숏드라마들과 다르다. 이 감독은 ‘세로 화면’에서 가족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을 봤다.

“찍을 때는 몰랐는데, 완성작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인물의 내면이 깊이 있게, 복합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기존의 영화처럼 주변 배경을 넓게 조망할 수 없지만, 인물의 얼굴과 표정, 내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영화 문법의 기본은 주연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조연의 외면은 따라갈 뿐이죠. 반면 쇼트폼은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세로 화면에서만 가능한 것이죠.” 주연인 정진영·이정은, 그들의 과거를 연기한 두 배우(강형석·박정윤), 어리지만 ‘인생 2회 차’ 모습을 보여주는 손녀딸 ‘도혜’를 연기한 8세 아역 박지윤까지 모두가 ‘신 스틸러’가 됐다.

이 감독은 잔잔한 이야기가 의외로 숏드라마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그는 “<라디오 스타> 같은 영화 시나리오는 이제 써도 투자받기 어렵다. 자극을 추구하는 게 콘텐츠 생태계에서 일반화된 것”이라며 “(영화보다)저비용으로 제작가능한 숏드라마로 가뭄의 단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 감독은 <아버지와 집밥>이 최근 보기 힘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콘텐츠’가 되길 바랐다. 그는 “가족이 한자리에 앉지는 않더라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같은 숏폼을 공유하면서 함께 볼 수 있지 않나”라며 “영화관에서는 제 나이대 사람들, 60~80대가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뻔하고, 흔한 얘기죠. 밥 한 끼가 얼마나 흔합니까. 하지만 흔한 것은 소중하죠. 자극의 시대에 시대착오적인지는 모르지만, 뻔함의 미학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