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
‘스포츠워싱’ 적극 활용
FIFA·오일머니가 만든 불공정한 그라운드
축구의 타락 해부

스포츠워싱, 축구를 집어삼킨 자본과 국가들
미겔 딜레이니 지음 | 박태인·정효웅 옮김
한스미디어 | 688쪽 | 3만5000원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접전은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선수로서 황혼기인 35세였던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는 선수 생활 마지막 꿈이던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수석 축구 기자인 미겔 딜레이니는 그 영광의 순간 중 한 장면에 주목한다. “메시의 어깨에는 비슈트가 걸쳐 있었다.” 아르헨티나 특유의 하늘색·흰색 줄무늬 유니폼을 아랍 전통 의상으로 가린 건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개최국인 카타르 국왕이었다. 메시의 생애에, 그리고 축구 역사에 깊이 남을 순간에 카타르가 끼어든 것이다.
이 장면은 눈치 없는 개최국의 숟가락 얹기 정도가 아니다. 축구판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카타르의 행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스포츠워싱’은 현대 권위주의 국가들이 체제를 존속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대내외에 발휘하고자 스포츠를 국가 차원에서 활용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전략을 구사한 나라는 러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이었다. 2003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는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팔렸다. UAE의 사모펀드 아부다비유나이티드그룹은 2008년 EPL의 맨체스터 시티를, 카타르 스포츠 인베스트먼트는 2011년 프랑스 리그1의 파리 생제르맹을 각각 사들였다.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은 2021년 EPL 뉴캐슬 유나이티드 지분 80%를 인수했다.
이들을 그저 권위주의 국가의 거대 자본이라고만 할 수 없다. 아브라모비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렸다. 다른 중동 자본에는 국가 왕실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들은 전례 없는 씀씀이로 유명 선수들을 데려와 자신이 소유한 팀을 유럽 최강 팀으로 끌어올렸다. 저자 딜레이니는 EPL을 가리켜 “외국 자본이면 적극 받아들이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한껏 빠져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풍족한 자원 덕에 거액의 선수 이적료와 임금 등 비용을 아무렇지 않게 지출했다. 이후 유럽 축구는 전례 없는 임금 인플레이션을 맞았다. “선수 노조(국제축구선수협회)조차 이적 시장이 ‘괴물’이 됐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고액의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클럽들은 상위 리그에서 성적을 내지 못해 강등됐고, 상위 리그에서 배분받는 많은 중계권료를 놓치며 재정 위기에 봉착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스포츠워싱은 최고 국가 대항전인 월드컵 개최 과정에서도 구사됐다. 2010년 12월, FIFA는 2018·2022년 두 월드컵의 개최국 발표를 동시에 앞뒀다. 러시아는 월드컵 개최국 투표권을 지닌 FIFA 집행위원 심리 프로파일을 만들어 누가 뇌물에 취약한지 분석했다. 카타르는 이 시기 프랑스 전투기와 에어버스 여객기를 사들이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카타르를 오가는 국영 카타르항공 직항 노선을 개통했다. 두 나라는 나란히 개최권을 따냈다.
스포츠워싱이 씻어내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했지만 인프라가 없던 카타르는 경기장 등을 건설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발 저임금 노동을 활용했다. 건설 과정에서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카타르도, FIFA도 사망자 규모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질문들은 쏟아지는 경기의 바닷속에 씻겨나간다”며 “축구는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선사한다. 패배의 고통조차 유대를 가져다준다. 그러한 힘이야말로 축구가 악용되는 이유”라고 했다. 스포츠워싱을 비판하던 활동가조차 중동 자본 소유 클럽의 열혈팬인 경우가 있다. “저 자신이 완전한 위선자라고 느낍니다”라고 할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도 스포츠워싱에 나서는 듯하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노벨 평화상을 못 받은 트럼프를 위해 ‘FIFA 평화상’을 만들어 바치는 등 행보는 “월드컵이 전 세계적인 권위주의 흐름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사우디는 이미 2034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됐다. 그에 앞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필두로 유럽 무대에서 뛰던 축구 스타들을 거액에 자국 프로 리그로 데려오기도 했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자본의 유입을 규제하지 않은 FIFA 등에도 책임이 있다. “FIFA는 궁극적인 독립 규제 기구여야 한다.” 스포츠워싱에서 파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문화는 이렇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월9일]“‘라디오스타’ 같은 시나리오, 이젠 투자받기 어려워”···‘천만 감독’ 이준익이 숏드라마에 도전한 이유 (0) | 2026.09.10 |
|---|---|
| [9월8일]“좋은 어른이란?”···인턴 최민식·CEO 한소희가 그려낸 한국판 ‘인턴’ (0) | 2026.09.10 |
| [9월4일]국제 학계 첫 ‘코리아’ 이름 공룡…천연기념물로 지정 (0) | 2026.09.10 |
| [9월4일]기예르모 델 토로와 어깨 나란히···나홍진, ‘올해 최고의 장르 영화 감독 30명’ 선정 (0) | 2026.09.10 |
| [9월2일]12년 전 히말라야 ‘빙하 쓰나미’ 예고한 PD···“1000명 희생 경고 현실 안 되길 바랐지만” (0) | 2026.09.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