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하나뿐인 지구’ 공동연출 최평순 PD 인터뷰
“예언·예고 아니라 관심 밖 일이 현실이 된 것”
남북극보다 사람 주거지 가까운 히말라야
방송장비 지고 5일 걷고 촬영감독 고산병
드론 없어 해발 5500m 올라 호수 담기도
산사태·빙하호 붕괴 호수 결합 재난 처음
순박한 이들에 너무 가혹한 기후변화 현장
이번 참사 통해서라도 인류가 지혜 모아야

“예언이나 예고라고 했지만, 과학계 시나리오를 방송에 담은 것뿐입니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인데 벌써 현실화가 된 것이죠.”
지난달 26일 네팔 중북부에서 벌어진 대홍수 후, 2014년 4월 방영됐던 EBS <하나뿐인 지구>가 화제가 됐다. 기후 위기로 히말라야 빙하가 더 빨리 녹고, 그 물이 모여 커진 호수가 일순간 범람하면 주변을 휩쓸 우려가 있다는 ‘빙하 쓰나미’를 다룬 ‘히말라야 대재앙, 빙하 쓰나미’ 편. 12년 전에 만든 다큐멘터리가 지금의 참사를 예고한 것으로 보였다. 참사 다음 날 유튜브 채널 ‘EBS 다큐’에 다시 업로드된 영상은 1일 기준 조회수 530만회를 넘겼다.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최평순 PD는 당시 다큐 촬영을 위해 히말라야를 직접 찾았다. 환경 전문 PD가 되고 싶어 2011년 EBS에 입사했고, 15년간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기후 위기로 황폐해진 가상 미래를 배경으로,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의 인공생태계 ‘바이오스피어 2’에서 연예인과 과학자들이 생존해 가는 모습을 그린 화제의 프로그램 <최후의 인류>도 공동 연출했다.
최 PD의 2014년 히말라야행은 <하나뿐인 지구>의 ‘기후변화 특집 3부작’ 중 하나였다. 남·북극에 이은 ‘제3극’으로 불리는 히말라야는 남·북극보다 사람의 주거지에서 가깝다. 기후 위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시에도 ‘빙하 쓰나미’는 진행형 문제였다.
최 PD가 찾은 해발 5010m의 임자 호수는 크고 아름다웠지만, 빙하 쓰나미의 위험을 안은 시한폭탄 같은 곳이었다. 영상 속 셰르파는 “20년 만에 왔는데 4~5배로 커졌다”고 했다.
그는 당시 트리부반대의 지질학과 교수, 히말라야 지역 연구 기관인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 책임자, 네팔 정부 인사 등도 인터뷰했다. 이들은 “임자 호수가 터지면 천 명은 희생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상에는 “빙하 쓰나미는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들어갔다. 한국 시청자들에게 기후 위기가 네팔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대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서고, 한국인 실종자 9명이 발생했다. 12년 전 경고가 현실이 됐다.
최 PD는 “환경 PD로서 ‘큰일 난다’고 경고하는 영상을 찍지만 (경고가) 현실화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큰데, 현실화되면 덜컥하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네팔 대홍수의 원인은 빙하 쓰나미로 통용되곤 했던 ‘빙하호 붕괴 홍수’(GLOF)로 추정됐다. 이후 분석에서 산사태와 자연 댐이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산사태로 무너진 빙하와 낙석이 자연 댐을 만들었고, 여기에 물이 급격히 차오르다 무너져 대홍수가 났다는 것이다. 최 PD는 이번 대홍수도 “기후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문제가 된 발원지 인근에 올해 역대급 이상고온이 있었고, 영구동토층이 해빙돼 토석이 떨어지고 빙하가 약해져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산사태나 GLOF는 계속 발생해 오던 일이지만, 산사태와 빙하 홍수가 결합된 듯한 초대형 재난은 저도 처음 본다”고 말했다.
촬영은 고생스러웠다. 최 PD는 “해발 2850m 루클라 공항부터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어 해발 4743m의 추쿵 마을까지 무거운 방송장비를 지고 5일간 걸어갔다”며 “촬영 감독 한 분은 고산병이 심해져 해발 고도 300m 아래 마을에 홀로 머물며 5010m 임자 호수까지 이틀 간 출퇴근했다”고 말했다.
무인기(드론) 촬영도 없던 때라 길이 2.3㎞에 이르는 임자 호수 전경을 담는 일도 힘들었다. 최 PD는 “고산병이 없던 다른 촬영 감독이 임자 호수보다 고도가 500m쯤 높은 건너편 산에 올라가서 찍었다”며 “압도적인 규모를 보여주지 않으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설득하기 어려워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최 PD는 “네팔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도 봤다. 알래스카나 알프스는 재난 모니터링이 잘 되고 있다고 한다”면서도 “히말라야는 더 고지대인데다 미국·유럽에 비해 네팔의 재원이 한정적이라 경보 시스템을 갖추기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그가 만난 히말라야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호수를 ‘신’으로 여기며 홍수에 대해 “잘못을 하면 (신이)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최 PD는 “그들의 미소가 순박했다. 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기후변화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최 PD는 “과학계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왔는데, 지금까지 ‘저배출’이 아니라 ‘고배출’ 시나리오대로 몇 년째 흘러가고 있다”며 “전 세계적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이 원활해지지 않으면서 화석 연료 의존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참사를 통해서라도 많은 이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실감하기를 바랐다.
“12년 전만 해도 기후 위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댓글을 보면 기후 위기를 체감한다는 여론이 많더군요. 12년 뒤엔 댓글의 내용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인류가 지혜를 모으고 행동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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