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정희진 지음
창비 | 216쪽 | 2만원
처음 만난 상대와 말이 잘 통하는 경험을 한 뒤, 평생 함께하겠다는 약속까지 하곤 한다. 저자는 그 큰 쾌감은 “예외적인 경우. 찰나적인 것”이라며 덧붙였다. “늘 강조합니다. 이때 결혼하지 말라고요.”
소통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저자는 조금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실제로 대화로 해결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면서 “‘소통이란 언제나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이다’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에 의심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공감과 소통을 원하지만, 상대적으로 간절한 사람은 약자다. 저자는 백인이나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들 같은 기득권은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공적인 개념으로 채택되는 말은 언제나 힘센 쪽의 언어”라고 지적한다. 기성 정치인의 말은 곧이곧대로 보도되지만, 사회적 약자는 ‘근거를 내놔라’라는 요구를 받을 때가 많다.
각자 고유한 몸을 가진 인간은 타인의 몸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다. 상대의 고통을 들을 수 있어도 느낄 수는 없고 이는 소통의 장벽이 된다. 저자는 비윤리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서가 더해져 “고통을 경쟁하는 문화가 일상의 일부가 됐다”며 “시스템 자체가 비윤리적일 때 유일하게 깨끗한 위치는 피해자의 자리뿐”이라고 했다. 수사받는 이들이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하고, 성폭력 가해자들이 ‘꽃뱀에게 물렸다’ 말하는 건 그래서다.
소통은 이렇듯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저자는 “‘나만 (소통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구나, 원래 어려운 일이구나’를 알게 될 때 우리는 나를 돌보는 소통, 나를 보호하는 침묵, 나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을 것”이라고 했다. 모두와 소통하려 애쓰기보다는 침묵이 나을 때는 침묵하고, 나에게 의미 있는 관계와 장면을 골라 최소한으로 소통하는 법을 연습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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