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수에즈운하 막혀 운항 차질 확산
ㆍ해상운임 폭등 ‘글로벌 물류대란’
ㆍ정부, 사태 커지자 허둥지둥 대응
국내 1위, 세계 7위 선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국내외에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선박 억류와 입출항 거부가 속출하는 데다, 대체 배편을 찾느라 해상운임까지 폭등해 ‘글로벌 물류대란’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논의될 때부터 운송 차질은 예견됐지만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한진해운에 따르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난달 31일부터 현재까지 한진해운 선박 141척 가운데 컨테이너선 41척과 벌크선(대형 화물선) 4척 등 총 45척이 정상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처리가 지연된 화물은 13만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다. 이는 미국 롱비치항에서처럼 고박·검수 등 하역을 하는 업체들이 대금 체불 등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하고 있는 탓이다.
이집트에서는 통항료를 지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진해운 선박의 수에즈 통항이 거부당했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1회 통항료가 70만달러(약 7억8000만원)에 이른다. 수에즈 운하는 중동의 홍해와 유럽의 지중해를 연결하는 92㎞ 운하로, 이곳을 지나지 못하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까지 돌아가야 한다.
한진해운 선박에 실렸던 TV와 자동차, 운동화 등의 화물이 묶이면서 월마트·아마존·타겟 등 미국 소매업은 직격탄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트럭 업체들까지 한진해운 선적 화물의 내륙 수송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해상운임도 급등하고 있다. 한진해운 주력 노선이었던 부산~미국 로스앤젤레스 컨테이너선 운임은 지난달 31일만 해도 1F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 2개)당 1100달러였지만 이날 현재 1700달러로 55%나 올랐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뒷북’으로 일관하면서 허둥대는 모양새다. 해양수산부는 이날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물류업계 및 선사들과 ‘수출입 화물 비상운송대책 회의’를 열고 대체 선박 투입을 늘리기로 했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한진해운이 단독 운항하던 유럽 항로에 투입될 현대상선 선박 9척이 이르면 이달 둘째주부터 운항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주노선에는 오는 8일부터 현대상선 선박 4척을 투입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부산·인천항에서 작업비 지급문제로 중단됐던 한진해운 선박의 컨테이너 고정 작업 등 필수 항만서비스가 재개될 수 있게 각 지역 항만공사가 작업비 지급 보증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당장 현대상선 선박을 투입한다고 해도 애초 한진해운에 실리기로 했던 화물을 빼서 다시 배에 실는 데 추가 비용이 상당히 든다”며 “그걸 모두 화주가 부담해야 하는 것인지, 물류 정상화의 관건은 결국 돈”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정부가 대책 없이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앞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협력업체와 해상 물동량 문제,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제기된 게 3개월 전인데도 대책마련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마비에 가까운 물류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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