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 6차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성동훈 기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김은경 혁신위원회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혁신위는 민주당의 도덕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변화를 이끌어야 할 혁신위원장이 ‘노인 폄하’ ‘코로나 세대 학력 저하’ 발언 논란 등 각종 설화의 중심에 섰다. 혁신위 스스로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라고 인정한 데 따른 한계도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될 뚜렷한 혁신안을 내놓지도 못했고, 당의 화합을 주도하기는커녕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여 있다. 혁신위가 민주당의 리스크가 됐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논란 중심에 선 혁신위원장

김은경 위원장은 노인 폄하 논란을 야기한 지 나흘째인 2일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춘천시에서 연 간담회에서 “저도 곧 60이다. 곧 노인 반열에 가는데 교수라서 철없이 지내서 정치 언어를 잘 모르고 깊이 숙고하지 못한 어리석음이 있었다”며 “어찌됐건 제가 상처를 드렸다면 노여움을 푸셨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그는 전날에도 노인폄하는 아니었다고 강조하며 “마음 상한 게 있다면 유감”이라고 밝혔지만 반발은 되려 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청년 간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청년들과) 똑같이 표결을 하냐”는 아들의 말을 언급하며 “합리적”이라고 해 구설에 올랐다.

대한노인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김 위원장의 발언을 “패륜”이라고 비판했다. 당 조직사무부총장인 이해식 의원은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당의 사과 입장을 전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3일 대한노인회를 찾아 사과할 예정이다. 하지만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당사자가 사과하러 와야 문제가 해결된다’며 김 위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춘천 간담회 직후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사과할 계획이 있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아무 답변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혁신위의 초동 대처 방식도 논란이 됐다. 혁신위는 ‘앞뒤 발언을 자른 언론 탓’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가 뒤늦게 사과 대신 유감을 표명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혁신위는 지난달 31일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한 비판은 “갈라치기 수법”이라며 “사과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의 설화는 반복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KBS 라디오에서는 당내 초선 의원들을 코로나19로 학력 저하를 겪은 학생에 비유하며 “코로나 때 딱 그 초선들이다. 소통이 잘 안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가 초선 의원들이 항의하자 사과 대신 유감을 표했다.

비전 제시도 혁신안 성과도 미미

혁신위의 도덕성 회복 과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혁신위가 소속 의원들에게 1호 혁신안으로 요구한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정당한 영장청구’를 전제로 한 반쪽짜리로 받아들여졌다. 혁신위는 2호 혁신안으로 ‘꼼수 탈당’ 방지책을 발표했지만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인 김홍걸 의원의 복당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혁신위가 체포동의안 표결 등 도덕성 관련 현안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은 이 대표 ‘사법 리스크’, 가상자산 투자 논란에 휩싸인 김남국 의원 제명 문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휘말린 의원들의 수사 문제 등을 두고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특히 검찰이 이 대표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을 회기 중에 청구한다면 민주당은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킬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민주당이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김남국 의원 제명 권고를 지킬지도 미지수다.

혁신위가 도덕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두고 당내 회의론도 있다.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은 “김 위원장이 ‘돈봉투 사건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말한 순간 실패는 예정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에 포위

혁신위가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에 둘러싸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혁신위는 전국 순회 간담회를 하고 있는데 당 지지자들은 대의원제 폐지와 ‘수박 청산’ 등을 촉구하고 있다. 혁신위가 전날 인천시당에서 연 간담회에서 이 대표 지지자들은 “수박 XX들 척결하고 혁신해” “이낙연과 화합하면 총선에서 져요”라고 고성을 질렀다. 김 위원장은 대의원제 폐지 요구에 대해 “(혁신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면서 진땀을 뺐다. 한 수도권 의원은 “혁신위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강성 지지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국민의 목소리로 착각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혁신위가 팬덤정치 청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지도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12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강성팬덤 문제에 대해 “그들이 놀 수 있는 놀이 공간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며 “그들도 BTS의 아미가 될 수 있도록 소통 통로를 만들어드리면 훨씬 건전한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 당원 온라인 소통 게시판인 ‘블루웨이브’에는 ‘낙지탕탕이’(이 전 총리) ‘똥파리’(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 ‘2찍’(정부·여당 지지자) ‘수박’ ‘찢’(이 대표) 등 혐오적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의 한계

혁신위 스스로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라고 인정한 것도 한계로 지목된다. 김 위원장은 당의 단합을 강조하면서 이 대표 체제에 힘을 실어 왔다. 쇄신안 마련을 위해 기본이 되어야 할 이 대표 체제 1년에 대한 평가와 반성은 혁신위 업무에서 제외됐다. 서복경 혁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이 대표 체제 평가를 두고 “저희가 위임받은 일의 범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혁신위가 당의 화합을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분란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혁신위가 어떤 혁신안을 내도 친이재명계의 주문을 받아서 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나”라며 “당의 분란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위가 손보려 하는 대의원제·공천 규칙 변경도 당내 갈등을 키울 수 있는 사안이다. 혁신위는 3호 혁신안으로 청년 공천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혁신위가 공천 규칙 수정을 요구한다면 강성 지지자들의 ‘수박 청산’ 요구가 다시 거세질 수도 있다. 친명계 원외 정치인들은 동일 지역구 3선 이상 출마 금지, 현역의원 공천 평가에 당원 평가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공천 규칙을 손보는 과정에서 계파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더불어 당장 혁신위가 공천 혁신을 위해 현역 의원뿐 아니라 이 대표에게도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많다.

혁신위 성공에 대한 당 안팎의 시선은 회의적이다. 이준한 교수는 “혁신위가 당의 반성을 이끌어서 유권자를 감동하게 만들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당의 분란이 끊이지 않고 구설이 생기고 비전은 제시하는 게 없고 일부 혁신안도 흐지부지되고 있다”며 “다른 혁신안을 내놓아도 당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쓴소리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혁신위가 의미 있는 일성, 방향, 시대정신을 제시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소수자·약자 등을 정치 신인으로 충원한다는 등 큰 원칙을 제시하면 된다”며 “높은 차원의 방향성이 아닌 세부적인 문제를 거론해서는 당원, 중도층, 일반 유권자가 민주당이 혁신한다고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