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가 정유라씨(21) 등 승마 국가대표 선수단을 지원하기 위해 마사회의 예산을 쓰는 방안을 지난해 1월초 현명관 당시 회장(76)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지원 방안은 삼성그룹 및 삼성이 회장사를 맡은 대한승마협회, 최순실씨(61)뿐 아니라 현 전 회장도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현 회장이 보고를 받았던 사실 및 시기를 마사회가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사회의 지원은 현 회장 보고 뒤 한달 뒤인 지난해 2월쯤 실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현 회장이 이를 보고받고 중단키로 결정한 시기와 ‘정유라씨가 독일에서 승마 훈련을 하며 특혜를 받고 있다’며 독일 파견 도중 돌연 귀국한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단 감독의 사임 시기가 맞물린 점이 의혹을 증폭시킨다.
27일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마사회 측에 질의한 ‘승마 장애물 종목 대표 선수단을 위해 마사회가 최초 수백억원에서 금액을 줄여가며 최종적으로 24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경위 및 협의 과정’ 답변서를 보면, 마사회는 “2016년도 마사회 CEO 경영 핵심과제 중 하나로 지난해 1월 초 CEO에 보고됐으나, 그해 2월에는 세부 시행계획이 검토되지 않았고 결론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의원과 마사회가 언급한 지원 방안은 2015년부터 독일에서 훈련 중이던 승마 국가대표 선수단을 마사회가 지원하는 방안이다. 승마협회는 2015년 9월 ‘한국 승마 중장기 로드맵 수립에 따른 후원사 지원요청 기본계획’을 수립해 승마 마장마술 종목은 삼성에서, 장애물 종목은 마사회에서 예산을 후원토록 정한 바 있다. 마사회는 2015년 6월 사내 조직인 승마진흥원 ‘한국승마선수단 지원방안 검토’ 보고서에서 장애물 선수단에 연 600억원을 지원하는 계획을 냈다. 그해 10월에는 대한승마협회가 작성한 ‘중장기 지원방안 로드맵’에서 장애물 선수단에 약 160억원(1안)과 약 62억원(2안)을 지원하는 방안이 적혔다. 두 보고서는 작성 주체가 다르지만 지원액을 제외한 추진 배경·세부 계획 등에 유사한 점이 많다.
김영규 당시 마사회 부회장이 지난해 10월말 “승마협회에서 650억원을 (마사회가 지원하는) 액션플랜을 가져와서 돌려보냈더니 150억원, 60억원, 24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차례로 들고왔다”며 “이를 회장님께 보고했더니 한번 검토를 해 보자고 했으나 갑작스럽게 안 하기로 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지난 6월26일 공개되기도 했다.
현 전 회장이 이 방안을 보고받았을뿐 아니라 작성에도 관여했다는 의혹도 남아 있다. 박원호 전 승마협회 전무는 지난 5월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2015년 6월 현 회장 지시로 마사회에서 1200억원이 소요되는 계획안을 작성한 사실을 알았고 최서원(최순실)씨가 현 회장에 이야기해 해당 문건이 작성된 것이라 생각했냐”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질문에 “누군가가 현 회장에 이야기해 이런 일이 나왔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지원 방안 검토가 시작됐다 중단된 시기는 박재홍 전 마사회 승마단 감독의 귀국·사임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박 전 감독은 2015년 독일에 파견돼 정유라씨를 비롯한 승마선수들을 지도하다 선수단 지원 몇 현지 훈련 내용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귀국했다가 마사회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박 전 감독은 지난해 1월9일 ‘당장 수행할 일이 없다’며 독일에서 귀국했는데, 이는 현명관 회장이 지원 방안을 보고받았다는 지난해 1월초와 시기가 겹친다. 지원 방안이 결국 무산된 때는 지난해 2월인데, 박 전 감독은 그해 2월26일자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 전 감독은 지난해 말부터 “독일 승마지원에 의구심을 품고 귀국했다가 최순실씨의 압력 때문에 승마단 감독직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김 의원은 “최순실씨가 현명관 전 회장과 결탁해 삼성뿐 아니라 마사회 예산도 승마 선수단 지원 명목으로 독일에 보내려다 이를 의심한 박 감독에 압력을 넣은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현 전 회장은 국정 농단 주범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씨가 독일에서 승마 훈련을 명목으로 체류받는 과정을 마사회가 지원하는 과정에서 “현 회장이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지난해 11월2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이던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참고인 자격으로 나와 조사를 받았다.
현 전 회장은 당시 입장문을 내고 “‘삼성-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마사회’, ‘최순실-이재용-박근혜’를 잇는 연결고리에 현명관이 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최순실 등의 존재에 대해서는 TV보도를 통해 알게 됐고, 최순실과는 전화번호도 없고 일면식도 없다”며 “이재용 부회장과는 마사회 임기 3년뿐 아니라 그 전에도 통화하거나 만나는 사이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대한승마협회의 중장기 로드맵 초안을 작성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이 마사회를 압수수색하고 관련부서 직원들이 조사를 했으니 곧 진실이 밝혀지고 무혐의 처리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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