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시대 양곡 창고가 있던 서울 도봉구 창동은 ‘창고가 있는 동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창동에 2만여 장의 사진을 품고 한국 사진의 역사를 선보이는 자리가 열렸다. 국내 최초의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으로 문을 연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개관한 것이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지난달 29일 개관 특별전과 함께 문을 열었다. 2015년 건립 준비를 시작한 뒤 10년 만이다. 국내에는 서울 뮤지엄한미,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등 사진만 전문적으로 다룬 사립미술관은 있었으나 사진 특화 공립미술관은 없었다.
연면적 7048㎡, 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미술관은 서울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도봉구 창동에 자리했지만, 지역 명칭의 유래인 창고처럼 1920~1990년대의 사진 및 관련 자료 총 2만여점을 소장했다. 20세기 전후 100여년 사이에 활동했던 사진가들을 조사해 그들의 목록을 정리했고, 사진작가 26명의 작품은 컬렉션으로 꾸렸다. 건립에 착수했을 때부터 10년 넘는 기간의 작품 수집 및 연구를 해온 것인데, 그 결과물이 개관 특별전인 ‘광채 : 시작의 순간들’과 ‘스토리지 스토리’이다.

‘광채 : 시작의 순간들’은 한국에 사진 기술이 도입된 때부터 20세기 말에 이르는 한국 사진 역사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긴 작가 5명을 조명하는 전시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1929년 한국인 최초 사진 개인전을 연 정해창은 회화적 구도나 대형 인화 등의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했다. 이형록은 한국전쟁 이후 도시 건설 현장부터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어린아이들까지 다양한 시민들의 삶을 촬영했다. 임석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해방 후 노동자와 현실을 사진으로 표현했고, 조현두는 그와 반대로 사물이나 풍경보다는 실험적인 추상 사진을 선보였다. 1960년대부터 왕성히 활동하다 1980년대부터 여성주의 작업에 천착해 온 박영숙까지, 이들의 작품 170여점 중 대다수는 미술관 소장품이다. 스크랩북에 남아 있어 손바닥만 한 사진부터 회화 작품처럼 큰 사진까지 크기와 종류가 다양하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건립 과정을 기념하는, ‘광채…’보다 미시적이고 현대적인 전시다. 창동의 ‘창(倉)’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전시 참여에 참여한 6명의 젊은 작가 중 주용성은 창동의 정체성과 역사, 개발로 인해 지워진 기억을 사진으로 담아 재구성하기도 했다. 원성원의 ‘완성되지 않은 건축, 지어지는 중인 자연’은 건축에 쓰이는 철근, 자갈, 콘크리트, 목재의 기원을 추적하고, 이것이 다시 자연을 닮은 방식으로 배치되는 과정을 사진과 대형 전시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 중에는 3차원 시뮬레이션이나 인공지능(AI), 인터랙티브 시스템까지 최신 기술을 통해 사진을 해체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것들도 존재한다.
두 전시 모두 오는 10월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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