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기울인 몸들 :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에 전시된 천경우의 ‘의지하거나, 의지되거나’. 윤승민 기자

 

어디선가 나지막이 들리는 소리가 있을 때 ‘귀를 기울인다’고들 한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귀를 기울이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

전시에 접근하고 감상하기 어려운 신체를 지닌 이들을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의 몸과, 그들이 느끼는 경험과 감각을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접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기획전 ‘기울인 몸들 :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는 국내외 작가 15팀의 회화, 조각, 사진, 건축, 퍼포먼스 등 작품 40여점을 공개 중이다. 참여 작가 중에는 장애인도 있다. 리처드 도허티는 수어를 쓰는 건축가이며, 데이비드 기슨은 휠체어와 인공다리를 사용하는 건축가다. 작가 김은설은 소리 내 말 할 수 있지만, 귀에 보청기를 끼고 상대의 입 모양을 보며 대화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기울인 몸들 :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에 전시된 판테하 아바레시의 ‘닫힌 시스템’. 윤승민 기자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기울인 몸들’은 약한 몸이라는 편견에 저항하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판테하 아바레시의 ‘닫힌 시스템’은 각종 약물의 이름이 쓰인 집 모형에서 뻗어 나온 관이 실험 기구와 연결된 모습의 작품인데, 인체를 묘사하지 않고도 다른 약물에 기대 생명을 이어가는 몸을 표현했다. 아바레시는 다리 보조기를 이용해 장애인의 신체를 묘사한 작품들로는 장애인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쪽 벽에 노년 여성들의 사진을 줄지어 전시한 천경우의 ‘의지하거나, 의지되거나’는 9쌍의 여성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설치한 것이다. 여성 9명에게 ‘돌봐주고 싶거나 기대고 싶은 오랜 친구들’을 초대하도록 한 뒤 말없이 손을 맞잡도록 하고 사진을 찍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 사진 액자 사이엔 맞잡은 손을 찍은 작은 액자가 수직으로 설치됐다. 노년 여성 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기울인 몸들 :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에 전시된 리처드 도허티의 ‘농인 공간 : 입을 맞추는 의자’. 윤승민 기자

 

2부 ‘살피는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지닌 이들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김은설의 ‘흐려지는 소리, 남겨진 소리’는 폴리카보네이트 벽으로 둘러싼 사면 안에서 영상이 재생하도록 한 작품이다. 소리가 난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귀를 가까이 가져가고 손이나 다른 감각기관을 가까이 가져가도 그 내용을 알아차릴 수 없다. 소리를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소통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가늠하도록 했다.

도허티는 전시실 내·외부에 ‘농인공간’을 설치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입구 계단에 놓인 세 가지 색의 ‘입을 맞추는 의자’는 그중 하나다. 의자에 앉은 이들은 농인처럼 얼굴을 보며 대화하게 된다. 주변을 지나는 이들은 의자로 막힌 계단 대신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이용하게 되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구분되지 않는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기울인 몸들 :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는 2022년 국제박물관협회가 ‘박물관의 정의’에 추가한 과제인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촉진한다’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전시실 초입에는 수어로 전시를 안내하는 영상이 상연된다. 일부 전시에는 두 명의 화자가 대화로 전시의 형태와 의미를 설명하는 ‘대화형 해설’도 설치돼 시각장애인도 전시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지하철역 등 공공시설에서 볼 수 있는 점자블록도 전시실 바닥에 깔렸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관람료는 2000원.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