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 강동혁 옮김
은행나무 | 536쪽 | 1만9000원
1988년 3월 이란에서 태어나 가족과 미국 인디애나주로 이주한 사이러스. 어머니는 미국 이주 후인 그해 7월, 이란 여객기를 적기로 오인한 미군의 격추 사고로 숨진다. 외삼촌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특수 보직을 수행했다. 전쟁터에서 말 탄 ‘신의 사자’를 연기해 동료 군인들이 목숨을 끊지 않고 전쟁을 정당화하도록 한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9·11테러의 영향으로 사이러스는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차별적인 말들을 수업 시간에 들으며 살았다. 대학 입학 후 아버지가 사망한 뒤엔 술과 약물에 중독됐다가 겨우 벗어났다. 글을 즐겨 썼던 사이러스는 어머니와 외삼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생각했다. 차라리 ‘순교’가 가치 있겠다며 관련된 글을 쓰려다 흥미로운 소식을 듣는다. 이란 출신 여성 작가가 죽음을 앞두고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것이다. 작가는 고통을 참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갖고 미술관에서 숙식하며 죽음을 기다리기로 했다.
느낌표(!)까지 붙은 소설의 제목은 순교자처럼 의미 있게 죽고 싶어 하던 주인공이 ‘유레카’를 외치며 뉴욕으로 떠나는 순간을 연상케 한다. 사이러스는 미술관을 찾아 작가를 만나고 대화하며 의미 있는 죽음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간다. 사이러스와 그의 부모, 외삼촌 및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시간을 넘나들며 교차하다 막판에 한 줄기로 엮인다. 등장인물들은 공교롭게 모두 경계인들이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이집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사이러스와 뉴욕에도 함께 가는 친구 ‘지’가 대표적이다.
죽음의 의미에 천착할수록 삶이 무엇인지를 곱씹게 되는 역설적인 이야기에, 1989년 이란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저자의 이력이 현실감을 더한다. 이야기의 반전을 깨닫고 책의 앞장을 다시 들춰보면 복선이 충실히 깔려 있었음을 알게 된다. 주로 시를 써왔던 저자의 첫번째 소설로, 지난해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21개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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