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도, 소리도, 만질 수 있지 않을까.
안소니 맥콜(79)이 서울 종로구 푸투라서울에서 연 아시아 첫 개인전 ‘안소니 맥콜 : Works 1972-2020’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맥콜에게 ‘빛을 조각하는 작가’라는 별명을 안겨 준 ‘솔리드 라이트’ 연작과, ‘소리의 에너지로 조각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현실로 옮긴 1972년의 초기 작품 ‘트래블링 웨이브’까지, 감각의 폭을 넓히는 설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영국 출신 작가 맥콜은 주로 빛을 활용한 설치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조각과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여 왔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도 지난해 시작한 개인전이 6월 말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층고가 10m 넘는 암실에 전시된 ‘솔리드 라이트’ 연작이다. 2006년 작 ‘당신과 나 사이’와 2020년 작 ‘스카이라이트’가 나란히 위치한다. 천정에서 바닥을 향해 내리쬐는 빛은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을 향한 핀 조명과 비슷해 보이지만, 눈길이 가는 곳은 조명의 종착지인 바닥에 새겨진 문양이기보다는 빛줄기다. 빛줄기를 가만히 응시하면 옅은 연기가 흐르는 게 눈에 띈다. 암실을 채우는 연기는 자욱하지 않아서 빛줄기 밖에서는 연기가 보이지 않는다. 빛에서 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바닥에서 빛을 올려다 보면 빛의 장막 안에 갇힌 듯한 느낌도 든다.
스카이라이트는 2020년 처음 선을 보였으나 당시에는 모형 크기로 제작됐다고 한다. 작가가 구상한 실물 크기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맥콜은 “수직 구조의 작품을 전시할만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래블링 웨이브는 소리를 형상으로 만들려던 맥콜의 의도를 구현한 작품이다. 바닥에 반구형 스피커 5개가 총 12m의 길이로 줄지어 설치됐다. 스피커는 차례로 백색소음을 사방에 퍼뜨리는데, 소리의 파도가 먼 곳에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효과가 생긴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음량과 순서는 조금씩 달라지며 듣는 이들은 입체감과 현실감을 느낀다. 가까이에 전시된 다른 작품을 감상할 때도 소리의 파도가 계속 들리면서 보는 이들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1972년 만든 작품의 원본은 분실됐으나 맥콜은 2013년 이를 재제작했다.
1972년 제작된 영상 ‘불의 풍경’, 같은 해 퍼포먼스로 상연됐다가 2011년 영상·설치 작품이 된 ‘써큘레이션 피겨스’는 맥콜이 빛에 관심을 쏟게 된 계기가 된 작품들이다. 불의 풍경은 들판에 가로 6개, 세로 6개씩 총 36개 지점에 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담은 것인데, 맥콜은 “영화는 퍼포먼스를 간접적으로 기록한다는 한계가 있다. 영화 자체가 기록 매체가 아닌 퍼포먼스가 될 수 없을까 고민했다”며 “관객이 스크린에 등을 돌리고 감상하는 영화를 구상하다가 ‘빛’을 쓸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게 솔리드 라이트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어로 ‘발행·유통 부수’로 번역되는 ‘써큘레이션 피겨스’는 구겨진 신문지가 바닥에 가득한 공간 한가운데 양면으로 놓인 스크린에서 사진을 찍는 작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이 비치는 형태의 설치 작품이다. 영상은 셔터 소리와 함께 잠시 멈추기도 한다. 방 안에 놓인 거울은 공간이 넓어 보이게 착시를 일으킨다. 보는 이는 신문지를 밟으며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공간과 감각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전시 작품들은 서로 궤를 같이 한다.
전시 작품 외에 맥콜이 전시 아이디어를 기록해 둔 메모도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9월7일까지. 관람료는 일반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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