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지랜드
애나 펀더 지음 | 서제인 옮김
생각의힘 | 440쪽 | 2만7000원

권위주의 국가의 여러 정보기관 중에서도 동독 국가안전부(슈타지)는 규모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동독 국민 1700만명을 감시하기 위해 슈타지는 요원 9만7000명과 정보원 17만3000명을 뒀다. 국민 63명 중 1명꼴로 요원·정보원이 있었으니, 시민 2000명당 1명씩 게슈타포(비밀경찰) 요원을 둔 나치 독일보다 컸다.
숫자만 봐도 느껴지는 슈타지의 집요함과 악랄함은, 슈타지에서 일했던 이들과 감시 대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다. 율리아는 열여섯 살 때인 1982년부터 이탈리아인 남자친구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대학 입학시험부터 취업에 번번이 낙방한다. 슈타지는 율리아의 앞에 연인과 주고받은 편지 사본을 보여주고는 그를 정보원으로 포섭하려 한다.
슈타지 출신 하겐 코흐는 친구 결혼식 축하용 소책자 12부를 만든 뒤 ‘음란물 제작 및 복제 혐의’로 체포됐다. 소책자에는 음란한 내용이 없었지만, 체포 당일 코흐가 슈타지에 낸 사직서가 원인인 듯했다. 슈타지와 검사는 코흐의 아내를 찾아가 ‘남편에게 관용을 베풀어주겠다’며 이혼 신청서에 서명하게 했고, 코흐에겐 아내가 서명한 이혼 신청서를 들이밀며 ‘사표를 철회하고 평생 복무 서약을 하라’고 종용한다. 슈타지에서 일했던 보크는 “시간이 갈수록 할 일이 많아졌다. ‘적’의 정의가 점점 넓어져서”라며 “사실 승진이 거기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해나 아렌트가 제시한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율리아는 “면밀한 감시를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였다”면서도 “저를 가장 망가뜨린 건 그 총체적인 감시”라고 했다.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조지 오웰 뒤에서>로 오웰의 치부를 전했던 저자는 그보다 앞선 2003년에 이 책을 썼다. 공교롭게 슈타지는 오웰이 비판했던 ‘빅브러더’를 현실에서 구현하려 했다. 최신 기술을 통한 감시와 해킹, 사생활 침해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20여년 전 쓰인 책에도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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