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있는 한, 키움이 4번을 걱정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즌 전 ‘2번 박병호’ 가능성이 거론됐고, 개막 후 ‘3번 박병호’가 등장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익숙한 4번에서 장타를 뻥뻥 터뜨렸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박병호의 타격 페이스가 조금씩 처지는 동안에도 무한 신뢰했다. 높은 타율에 비해 홈런이 적을 때도 박병호를 믿었고, 리그에서 가장 먼저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됐다.
5월 중순, 박병호의 타격감이 처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5일 고척 삼성전을 마친 뒤 기록한 타율 0.376이 정점이었다. 언젠가는 반등하리라 믿었던 박병호의 타율은 한 달만인 지난 5일 0.291까지 떨어졌다. 다음날 박병호는 1군에서 빠졌다. 타격 부진으로 박병호가 2군에 내려간 건 히어로즈 이적 후 볼 수 없던 일이었다.
박병호가 빠진 그림자가 작지는 않았지만, 키움은 제리 샌즈로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8월 대체 외인 타자로 팀에 합류했던 샌즈는 한국 생활 2년차인 올해 가장 먼저 60타점을 넘겨 타점 부문 선두가 됐다. 박병호가 비운 4번 자리는 샌즈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샌즈 역시 4번 타순에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6일부터 11일까지 5경기 연속 4번 타순에 들어선 동안 21타수 4안타(타율 0.190)에 그쳤다. 박병호가 5월 이후 4번타순에서 기록한 타율 0.236보다도 낮았다. 키움의 5월 이후 4번타순 타율은 0.228에 그친다. 전 구단 중 가장 낮다.
11일 창원 NC전은 4번 타순에 불안과 기대가 공존한 경기였다. 이날 경기에도 4번·1루수로 선발출전한 샌즈는 첫 타석 볼넷을 얻어냈으나 이후 네 타석에서 두번의 삼진과 두번의 뜬공으로 물러났다. 6회초 2사 만루에서 맞은 네번째 타석에서는 잘맞은 타구가 우익수 정면을 향해 뜬공 아웃됐다. 8회초 무사 2·3루 상황에서는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마지막 타석에서 희망을 봤다. 8-8 동점에서 맞이한 연장 10회초 1사 3루에서 샌즈는 우익수 깊은 뜬공을 쳐 주자를 불러들였다. 이는 그대로 결승점으로 연결됐고 키움의 9-8 승리와 3연승에 밑거름이 됐다. 앞선 타석에서 찬스 때 범타로 맥을 끊었던 샌즈가 다시 타격감을 끌어올릴 기회를 찾았다.
혹여 샌즈가 다시 부진하더라도 득점력을 높일 방법은 있다. 앞 타순인 2·3번에 들어서는 김하성과 이정후가 주말을 기점으로 조금씩 타격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김하성은 11일 경기에서 3타수 3안타에 3타점, 3득점을 기록했다. 안타는 모두 장타(홈런 1개, 2루타 2개)였고, 볼넷도 3번 얻었다. 이정후는 11일 5타수 1안타 1타점에 그쳤지만 꾸준히 3할 타율을 이어가고 있다. 김하성은 “최근 리듬, 타이밍 등 타격 메커니즘에 좀 더 집중하며 훈련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금만 버티면 박병호도 돌아온다. 키움은 박병호의 1군 진입 제한 시점이 풀리는대로 다시 엔트리에 합류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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