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 출신 독립운동가, 독립운동을 한 제주 해녀, 방직·섬유 공장 여성 노동자들…
작가 홍영인(53)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연 개인전 ‘다섯 극과 모놀로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 중심에 뒀다. 전시장 한 가운데를 원형으로 두른 총길이 20m 삼베 태피스트리(직물 공예품)의 외벽에는 그들의 이름과 업적이 자수로 된 그림과 영어 설명으로 새겨져 있다.
여성 의열단원이던 현계옥, 조선여성동우회 등 일제시기 여성단체를 결성하는 데 참여한 정칠성은 기생 출신이었다. 평원고무의 여성 노동자였던 강주룡은 임금 삭감에 맞서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해녀 부춘화와 김옥련, 부덕량은 1930년대 제주의 해산물 가격을 강제로 올리려던 일제에 맞서 항쟁을 벌였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와 청계피복노동조합 노동자 신순애까지. 일제강점기부터 산업화에 이르기는 20세기의 순간마다 한국에서 여성 운동의 존재감을 알렸던 이들이 망라됐다.

홍영인은 “2000년대 중반, 동대문에서 바느질과 재봉틀 자수를 배웠다”며 “바느질을 배웠던 분이 연세가 많으셨는데, 그분의 삶을 들으며 ‘오랫동안 한국 경제에 기여했지만 사라지신 분들’을, 이들이 한국 근대화 속 여성 노동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산업화 시기이던 1960~1980년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20세기 초반으로 확장됐고, 2022년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관련 연구를 한 결과물이 이번 전시다.
태피스트리의 주변에는 차임벨, 내부에 금속 종이 들어간 대형 나무 공, 고리던지기, 천정에서 내려오는 긴 밧줄 등 ‘소품’ 연작이 함께 놓여 있다. 천연 섬유와 버드나무, 금속 등의 자연 재료가 공예 장인들과의 협업 후 조각으로 탄생했다. 태피스트리 아래에는 작은 북과 종 등 다양한 악기가 놓여 있다. 소품과 악기들은 전시 기간 벌어지는 다섯 차례의 즉흥 공연 때 다양한 소리를 내며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한다. 전시명에 ‘다섯 극’이 들어가고, 태피스트리의 이름이 ‘퍼포먼스 다섯 극을 위한 원형 매뉴얼-원형 프레임 외벽’인 이유다.

홍영인은 “예술이 우리가 표현할 수 없던 고귀한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대가 있었다”며 “퍼포먼스(즉흥 공연)가 일종의 제례라고 생각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태도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태피스트리 내부에는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눈앞에 둔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에서 착안한 동물의 형상이 새겨졌다. 이 또한 작가가 제례와도 같은 즉흥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즉흥 공연은 지난 8일과 24일에 각각 진행됐고, 다음달 14일과 28일, 오는 7월12일에 추가로 열린다. 전시는 7월20일까지. 관람료는 성인(25~64세)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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