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지난해 5월28일 ‘구의역 참사’ 이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은 고통받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그 이후에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망이나 사고는 끊이지 않았고 이것들은 ‘또 다른 구의역 참사’로 불리고 있다.
노동절인 지난 1일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선박건조장에서 대형 타워크레인이 쓰러지며 하청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을 덮쳐 6명이 숨졌다. 지난 1월에는 LG유플러스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전북 전주 특성화고 3학년 홍모양이 실적 고민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양은 LG유플러스 상담 대행업체의 고객센터에서 일했다.
지난해 9월13일 0시에는 경북 경주시에서 열차 선로 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2명이 KTX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이날은 경북 일대에 지진이 발생해 KTX 운행이 지연됐으나, 하청노동자들은 이를 전달받지 못하고 근무하다 변을 당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경북 경산시의 한 편의점 30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새벽 2시에 근무하다 강도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지난 1월에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철거 중이던 호텔 건물이 무너져 노동자 2명이 숨졌다. 이들은 시공업체인 원청도, 하청 철거업체도 아닌 재하청 인력업체 소속이었다.
구의역 참사 1주기를 코앞에 두고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일 오전 1시30분쯤 인천국제공항 터미널과 탑승동을 오가는 셔틀트레인 변전실에서 3명의 노동자가 작업 도중 중경상을 입었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해당 업무를 위탁받은 부산교통공사 소속이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이런 고통들은 ‘위험의 외주화’로 불리며 일상화되고 고착화됐다. 기업들이 정규직을 고용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많은 부문들을 위탁·하청업체에 맡겨온 탓이다. 원청들은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안전을 외면했다. 하청업체는 더 적은 비용으로 일할 수 있음을 원청에 보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만 소외됐다. 노동자와 하청업체가 일감이나 고용의 키를 쥐고 있는 원청업체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이런 상황들을 부추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뒤인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각 기관의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늘어난 외주화와 비정규직 채용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민간 대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원·하청 간 불합리한 관계를 해소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일 것인가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2015년 주요 업종별 30대 기업에서 발생한 중대 산업재해 피해자 중 95%가 하청노동자다.
민간기업들이 원·하청 관계 개선을 위해 별도의 자회사를 세워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방식이 거론되는데, 향후 자회사가 필요 없어지면 노동자들이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의 경우 비용 절감·규제 회피 차원에서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돌리는 측면이 많다”며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효과적인 정책 수립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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