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두 주인공인 차세계(허남준·왼쪽)와 신서리(임지연). SBS 제공

 

조선 역사를 현대로 끌고 온 두 드라마가 최근 나란히 인기를 끌었다. MBC <21세기 대군부인>의 지난 16일 마지막회 전국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13.8%로 1위(13.8%)를 차지했고, 같은 날 방영된 SBS <멋진 신세계> 4회 시청률은 3위(6.0%)였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호응도가 높았다. <멋진 신세계>는 ‘글로벌 톱 10 비영어권 쇼’ 주간 시청순위에서 5월 첫 주(4~10일)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둘째 주(11~17일) 2위를 기록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디즈니+에서 북미·유럽·중남미 등 글로벌 지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공개 후 28일 기준) 한국 시리즈 기록을 세웠다.

두 드라마는 대체 역사물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여러모로 상반된 면모를 보이며 각자 방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조선의 입헌군주제가 유지된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왕실과 신분제가 극의 중요한 배경이자 설정이다. <멋진 신세계>는 조선 왕실의 후궁 ‘강단심’(임지연)이 현대 한국에서 무명 배우 ‘신서리’로 깨어나며 시작된다. <21세기 대군부인>은 2006년 MBC 드라마 <궁>을, <멋진 신세계>는 2003년 SBS 드라마 <천년지애>를 연상시킨다. 그 사이 20여년 동안 비슷한 창작물도 여러 차례 나왔을 정도로 설정은 낯설지 않다.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주인공인 성희주(아이유·왼쪽)와 이안대군(변우석).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극의 구조는 상반된다. <21세기 대군부인>은 변우석과 아이유, 투톱 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어린 왕 대신 섭정하는 숙부 ‘이안대군’(변우석)과 능력과 재력은 갖췄지만 재벌가의 서자라 신분 상승을 노리는 ‘성희주’(아이유)가 결혼식을 올리고, 주변인들은 반발한다. 극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흘러간다. 두 인기 배우의 존재감과 단순명료한 전개를 좋아하는 이도 많았다. 다만 드라마는 서사나 개연성보다는 두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다.

드라마를 연출한 박준화 감독은 지난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스토리에 부족함이 있더라도 주인공의 인간적인 모습과 관계를 잘 만들고자 했다”며 “(변)우석씨는 입체적인 연기를 하고자 했지만, 제가 이안대군의 무게감을 표현하고자 많이 눌렀다. 그게 일차원적으로 비춰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SBS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 강단심은 신서리의 몸으로 다시 깨어난 뒤 드라마를 보며 현대사를 배운다. SBS 제공

 

<멋진 신세계>는 임지연을 원톱으로 내세운다. 4회까지는 임지연 ‘원맨쇼’에 가깝다. 설정과 서사에 임지연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사약을 먹은 강단심은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권모술수 끝에 후궁 자리에 올랐을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처세에 능하다. 현대에서 깨어난 후에도 상대의 말과 행동을 보며 어떻게 대응할지 수 싸움하듯 고민한다. 강단심이 낯선 현대 사회에 뻔뻔하게 적응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건 이런 설정에 임지연의 연기력이 더해진 결과다.

깨알 같은 패러디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강단심은 조선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알고자 드라마를 섭렵하는데, <여인천하>를 보다가 “멋지다”를 외치는 장면은 <더 글로리>의 “멋지다, 연진아”를 연상시킨다. <야인시대>의 격투 장면, 유명 배우의 영화 속 대사를 조합해 2차 창작 영상으로 만드는 유튜브의 문화까지도 녹였다.

SBS <멋진 신세계> 극 중에 등장한 영상 한 장면. 극 중 무명배우 신서리의 대사가 노래처럼 2차 가공돼 떠돌고, 신서리는 유명해진다. 유튜브 캡처

 

대체 역사물에 언제나 따라붙는 역사 고증 문제를 <21세기 대군부인>은 피하지 못하며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5일 방영된 11회 이안대군의 왕 즉위식 장면이 문제가 됐다. 이안대군이 쓴 구류면류관과 신하들이 외친 ‘천세’는 중국의 제후국이던 조선 때의 예법을 고증한 것이지만, 중국과 대등한 관계인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이를 적용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그간 대체 역사물에는 조선 대신 대한제국의 예법을 따라 십이면류관과 ‘만세’를 사용해 왔다. ‘왕의 대비가 있는데 숙부가 섭정하는 것이 맞느냐’는 등 기존에 제기됐던 고증 문제까지도 재점화됐다.

결국 <21세기 대군부인>은 종영 후 주연 배우 변우석, 아이유, 대본을 쓴 유지원 작가와 박준화 감독까지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박 감독은 “변명의 여지 없이 죄송하다. 판타지의 설정에 매몰되느라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드렸다”고 말했다. 디즈니+ 등 OTT에서는 즉위식의 ‘천세’ 음성이 삭제됐다.

MBC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의 주인공인 성희주(아이유·왼쪽)와 이안대군(변우석).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고증 문제는 <멋진 신세계>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조선 시대 또한 극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임지연과 주요 배우들은 시대를 넘나들며 1인 2역을 연기한다. 왕실에서 희빈으로 불렸던 강단심은 실존 인물 장희빈을, 강단심에게 사약을 내린 임금 ‘안종’(장승조)은 숙종을 연상케 한다. 조선을 배경으로 한 인물의 관계가 현대에서도 이어지리라 예상되는 대목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의 논란으로 사극의 역사 고증을 바라보는 눈은 더 예민해졌다. <멋진 신세계>도 후반 작업에 더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속 이안대군의 왕 즉위 장면. 참석자들은 몸을 조아리며 “천세”를 외쳤는데, 현재는 대사 음성이 삭제됐다. 유튜브 캡처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