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게릴라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

벤자민 영 지음 | 옥창준 외 옮김

너머북스 | 376쪽 | 2만7000원

“잿더미에서 부활한 작은 나라이고, 전후 복구와 놀랄 만한 산업 생산량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남긴 이 말은 그가 1960년 직접 방문한 북한을 가리킨 것이다. 한국전쟁 후에도 중공업 기반을 갖춘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후 주체사상을 확립하며 자주·주체를 강조해온 북한은,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워 스스로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쿠바·베트남 등 제3세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저자는 “냉전 시기의 북한은 일부 서방 학자들과 제3세계 지도자들이 보기에 모방하고 동경할 만한 발전 모델이었다”고 설명한다.

김일성은 베트남전쟁 중인 북베트남에 1957년 홍수 구호 지원을 하고, 이후 호찌민에게 군사적 지원을 제안하며 “국제주의 혁명 지도자로서 위상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는 국내 권위를 강화하는 도구로도 쓰였다. 베트남을 향한 미국의 침공이 북한에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북한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때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북한은 “김일성을 세계혁명 지도자이자 반식민 저항운동의 영웅으로 홍보”하기 시작한다. 해외 매체를 통한 김일성 선전은, 북한 주민도 ‘온 세계가 김일성을 숭배한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은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하기보다는 자국의 매력 없는 선전적 내용을 강압적으로 전파했다”며 “제3세계에서 북한의 소프트파워는 종국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책은 해외 여러 나라의 사료를 바탕으로 북한이 제3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어간 과정을 소개한다. 다만 그 외교 활동이 북한 내부를 단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짚는다. 1983년 버마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또한 김정일이 북한의 차기 지도자 지위를 공고히 하려던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 이는 경제 성장과 함께 높아진 남한의 국제적 위상과 맞물려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초래하는 중대한 사건이기도 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