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은 ‘정지’, 다른 일자리 얻기도 힘든 연극인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연극배우 최명경씨(왼쪽)는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이 중단되자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소품 트럭을 운전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오재균씨는 출연 중인 연극 작품이 도중에 막을 내린 데 이어 부업으로 운영 중인 식당도 경영난에 처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후배들도 많다면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연극배우 최명경씨(46)는 “그래도 나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한 달간 그는 방송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소품 트럭을 운전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배역을 맡은 연극 작품이 코로나19 사태로 3월22일까지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2월 마지막 날 간판을 내리며 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씨는 “보통 소품 트럭 기사 계약은 방송 프로그램 단위로 하는데, 촬영 중이던 드라마의 소품 기사가 펑크를 내 알음알음 겨우 자리를 구했다”면서 “코로나19 탓에 새로 촬영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고 말했다.
연극배우 겸 연출가 오재균씨(48)는 출연작과 연출작인 연극 두 편 모두 코로나19 여파로 작업이 중단됐다. 연극으로 버는 수입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어 운영 중인 식당도 코로나19 충격에 손님이 줄며 파리만 날린다. 주문도 받고 설거지도 하면서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 6학년생 딸을 위한 생활비를 벌어온 곳이지만, 요즘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겨우 문을 연다. 오씨는 “식당에서는 각종 세금, 임대료, 재료비에 직원 월급 주기 빠듯하고, 생계 때문에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 연습을 못하니 연극 출연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일정 못 채우고 작품 막 내려
“촬영 현장 소품기사 빈자리
대신 맡아 운전해 수입 마련”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요즘 연극계에는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연극 제작비 안에 식대가 포함돼 보통 배우와 스태프들은 연습을 하면서 끼니를 해결하는데, 연습 자체가 없어지니 끼니를 때우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연극인들이 일자리가 없어 한 달 생활비 수십만원도 쥐지 못하는 상태”라며 “혹여나 아르바이트 자리가 난다고 하더라도 공연 연습이 재개되면 무대에 설 기회를 잃을까봐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수도권의 연극인들은 형편이 낫다. 오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았던 대구·경북 지역 연극계는 거의 ‘전멸’”이라고 말했다.
공연예술계는 코로나19 확산 전에도 각종 복지대책의 대표적인 사각지대 중 하나로 꼽혀왔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활고 끝에 사망한 이후에야 ‘최고은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지만, 연극인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로 공연마다 계약을 맺기 때문에 4대보험이나 실업급여 혜택은 기대할 수 없다. 계약이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씨는 “연극인들이 공연에 참여하며 계약서를 쓰긴 하지만, 계약서에 적힌 금액을 모두 가져가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습 있어야 끼니 챙기는데”
아르바이트 자리 찾더라도
무대 재개 때 곤란할까 걱정
이 같은 현실에 코로나19 사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배우들은 연습실에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내수가 침체되면서 생계를 꾸릴 부업과 아르바이트 자리도 줄었다. 최씨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계약된 금액을 모두 줄 생각이 없던 제작사들이 코로나19를 빌미 삼아 공연을 멈추고 돈을 떼먹은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코로나19 피해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접근이 쉽지 않다. 예술인들이 자신의 경력이나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상황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저금리 융자라고는 하지만 벌이가 많지 않은 예술인들에게는 상환 부담이 크다. 김관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은 “평소 많은 수익을 내지 못했던 공연 제작자들 중엔 아직도 2015년 메르스(MERS) 때 빌린 융자금을 다 갚지 못한 이도 있다. 이들은 이번 위기에는 대출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연극계를 위한 지원책이라고 나오는 것들은 대체로 기존에 있던 지원책에 예산을 조금 더 늘린 정도다. ‘생색내기’라는 생각에 많은 연극인들이 마음고생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저금리 융자 대책에도
경력·피해 상황 증명 어려워
“현 지원책, 탁상행정 아닌가”
지원 규모가 크지 않아 모든 예술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도 못한다. 최씨는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이 지원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신청을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책에 대한 연극계의 소외감도 크다. 오씨는 “서울시에서 ‘객석 간 2m 거리를 유지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는데, 그러면 50명 남짓 들어오는 소극장에서는 관객이 앉을 공간이 사실상 없다”며 “물리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건 아는데, 정책 담당자들이 연극계의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코로나19 해결 직후 관객들을 극장으로 다시 모으지 못한다면 연극 등 무대예술 전체가 존폐 기로에 놓일까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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