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39)이 2002년 대학 입시에서 외국고교 출신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별도 전형으로 카이스트 학부에 입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미국 이중국적을 갖고 있던 아들 박모씨는 외국인만 입학 가능한 서울외국인학교에서 고교 과정을 이수하고 카이스트 학사과정 신입생 ‘3차 모집’에 응시해 합격했다. ‘3차 모집’에는 2002년 3~8월 국내·외 외국고교 졸업 예정자만 지원할 수 있었는데, 한국 소재 외국인학교가 여기에 포함된다.
박씨는 외국인학교 졸업과 카이스트 합격 직후인 2002년 7월 미국 국적을 포기했는데, 당시는 박 후보자가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공천을 신청한 때였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박씨는 현재 카이스트 동문들이 해외에 차린 도박사이트 운영업체의 관리자를 맡고 있다. 해외에 서버를 둔 이 사이트는 현재 한국 내 접속을 차단하고 있지만 우회 접속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이스트 합격 후 미 국적 포기
19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박 후보자의 아들 박씨는 1983년 12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박 후보자는 그 해 6월 해군 중위로 전역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1985년 6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 후보자는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뉴욕대에서 학위를 추가로 받았고, 부친과 함께 해외 생활을 하던 아들 박씨는 국내 귀국 후 서울외국인학교를 다니다 외국고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카이스트 ‘3차 모집’ 전형에 합격해 2002년 9월 입학했다. 입학정원의 90%를 차지하는 ‘1차 모집’은 과학영재선발위원회로부터 지원 자격을 인정받은 고교 2년 수료 예정자, ‘2차 모집’은 국내 고교 졸업(예정)자로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3차 모집’은 외국고교 졸업 예정자가 대상이었다. 3차 모집자에 한해 9월 입학이 허용됐다.
부친인 박 후보자의 종로 보궐선거 입후보 직전 미국 국적을 포기한 그는 2002년 7월 최초 신체검사에서 병역면제 처분(6급)을 받았다. 사유는 악성종양에 의한 질병이었다.
박 후보자는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이 확정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의 자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중국적 상황”이라며 “아버지가 정치를 한다고 (아들에게) 미국 국적을 포기해라, 강요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아들의 외국인학교 재학에 대해서는 “(동생과 달리) 한국 교과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아들 박씨는 대학생 시절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모 대기업의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카이스트 내에서 유명인사로 통했다. 졸업 후에는 국내 시중은행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도박사이트 재직 논란
박씨가 카이스트에서 쌓은 인맥은 이후 직장·사회생활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국회에 인사청문요청안을 제출하면서 ‘독립생계’를 이유로 장남 박씨의 재산신고사항 고지를 거부했다. 이에 대한 증빙으로 “박씨가 2018년 12월11일 운영부사장으로 채용됐고 현재는 운영관리자로 근무 중”이라는 NSUS 그룹 명의의 서신을 첨부했다. NSUS 그룹의 소재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이고, 박씨는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해 급여는 7만5000 캐나다달러(약 7332만원)였다.
NSUS 그룹에 속한 ‘앤서스 인터랙티브’는 도박사이트 ‘지지포커’를 운영하고 있다. 회사의 소재지는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지지포커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업체는 역시 NSUS 그룹에 속한 것으로 보이는 ‘앤서스랩’이다. 이 회사는 2014년 국내에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됐다가 2019년 유한책임회사로 법인형태를 변경했다. 앤서스랩에서 2017~2018년 등기이사를 맡은 김모씨(41)는 박씨의 카이스트 선배이자 지지포커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고 대표인 임모씨(39)도 카이스트 출신이다.
지지포커는 과거 국내 이용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2020년 10월 한국 서비스를 정식 종료한 것으로 보인다. 포커 커뮤니티 이용자 사이에서는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한 지지포커 우회 접속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하는 도박 사이트이더라도 국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한국에 지사가 있을 경우 국내법상 도박장소 등 개설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협 의원은 “박 후보자 장남이 해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대한 도덕적인 문제뿐 아니라 법적 처벌 대상이 되는지를 철저히 검증해야 하고 박 후보자가 자녀의 하는 일을 알면서도 방치했는지도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해외 거주 중인 박씨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지지포커 운영 경위에 대해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외교부 인사청문 준비단 측은 “후보자 장남은 기술자로서 엔서스그룹 내부의 전산시스템을 유지·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었을 뿐 회사의 사업 영역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회사 간 지배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며 “어떠한 불법적인 기업 활동에도 관여한 사실이 없고, 최근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엔서스그룹을 퇴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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