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재호가 지난 1일 일본 미야자키 소켄구장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베어스를 거쳐온 스타들은 많지만 김재호(35·두산)만큼 선수생활 행보가 지금의 두산과 들어맞는 선수가 또 있을까 싶다. 학생 때의 빛난 재능으로 프로 문턱을 넘고도 두산의 두터운 선수층에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참고 경쟁한 끝에 지금은 팀과 리그를 대표하는 유격수가 됐다. 두산의 내야 수비를 진두지휘하는 것은 물론, 하위타순에서도 쏠쏠하게 한방을 쳐줘 때에 따라 상위타순에도 기용될만한 타격 능력을 갖췄다. 두터운 선수층에서의 내부 경쟁, 안정된 수비와 찬스에서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리그 강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두산의 야구와 김재호의 야구는 매우 닮아 있다.

2016~2017년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김재호는 그래서인지 두산에 대한 애착이 크다. 두산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선수가 나와야 한다는 의견이 팀 안팎에서 계속됐던 올해 스프링캠프, 김재호도 끊임없이 후배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를 수비에서 넘어서야 한다.” “수비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단점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주중 일본 미야자키 캠프에서 만난 김재호에게 “언제부터 수비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물었다. 김재호는 두산 내야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지냈던, 지금 자신이 격려하고 조언하는 젊은 백업 선수들과 비슷했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김재호는 “스물 한두살 때부터 수비에는 관심이 있었다”며 “화려한 스텝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남들이 하지 않는 나만의 플레이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관심만으로 프로 주전 선수가 될 수는 없었다. 프로에서는 수비에서의 화려함보다는 안정감을 요구했다. “코치님들이 러닝스로를 못하게 하시고, 다리로 공을 쫓아가는 연습을 많이 시키셨어요. ‘다리로 공을 잡으라’는 거죠.” 김재호에겐 많은 연습이 뒤따랐고, 경기에 출전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두산 김재호가 지난 4일 일본 미야자키 소켄구장에서 수비훈련을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뒤, 김재호는 2008년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넘게 출전(112경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 해 남긴 실책은 14개. 두산에서 가장 많았다. 이듬해 손시헌이 전역하자 김재호의 입지는 다시 줄었다. “수비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거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 뒤로 수비를 정말로 열심히 했다”고 김재호는 말했다.

글러브에서 공을 빨리 빼는 능력은 누구보다 빼어났지만, 스텝은 그렇지 못했다. 그걸 고치는 데 2년쯤이 걸렸다고 했다. 김재호는 “팀에서 자리잡기 위해선 수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수비왕이 되자’고 마음먹었다”며 “선수들이 남아서 보충훈련을 할 때 저는 ‘수비만 하겠습니다’라고 하고 타격 대신 수비만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가 후배 내야수들에게 ‘수비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재호는 “기회가 되면, 수비로 경쟁력을 보일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그러다보니 1·2군을 왔다갔다 하시던 김진욱 감독님께서 저를 높이 평가해주셨고,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두산 김재호가 지난 4일 일본 미야자키 소켄구장에서 타격훈련을 기다리고 있다. 두산베어스 제공

 

더 나은 수비수가 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은 여전히 김재호에게 큰 자산이다. 그는 “한 2년 정도, 김민호 코치(현 KIA 코치)님께서 ‘스텝이 불안하다’며 안정감을 강조하셨다. 지금까지도 그 때 강조하셨던 분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연구는 멈추지 않는다. 해외 리그 유격수들의 영상을 틈날 때마다 찾아보고 있다. 하체 밸런스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김재호는 “상체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송구하는 팔에도 힘이 들어가고, 그러면 송구가 손에서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며 “하체가 안정된 상태라면 송구하려는 방향으로 공이 정확히 날아간다. 하체의 부드러움과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후배들과의 내야 수비 훈련 때도, 생활할 때도 이런 얘기를 나누곤 한다. 김재호는 “예전에는 후배들이 선배 눈치 보기 바빴는데, 지금은 편하게 부담없이 형·동생처럼 지내고 있다”며 “그런게 보기 좋다”고 말했다. 후배들을 향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건 두산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 때문에 가능하다. 김재호는 “(손)시헌이 형, (이)종욱이 형, (최)준석이 형이 떠나갈 때 ‘형들이 없는데 누굴 의지해야하지’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세대가 팀을 끌어가야한다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레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잠시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김재호는 “이제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올텐데, 더 성장해서, 형들이 떠나가도 그 빈 자리 채워갈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준비를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야자키|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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