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한국전력 서재덕이 21일 경기도 의왕 한국전력공사 자재검사처 체육관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남자배구 한국전력 서재덕이 21일 경기도 의왕 한국전력공사 자재검사처 체육관에서 스포츠경향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아마 올 시즌은 제가 프로선수로 뛴 여덟 시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이 될 것 같아요.”

도드람 2018~2019 V리그 정규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에서 한국전력 서재덕(30)은 다사다난했던 시즌을 돌아봤다. 팀은 개막과 동시에 16연패에 빠졌고, 개막 직전 급히 교체된 외국인 선수는 부상 탓에 5경기만 뛰고 한국을 떠났다. 지난 시즌 무릎 부상으로 정규시즌의 3분의 1밖에 뛰지 못한 아쉬움을 씻고 팀 주장까지 맡았지만 한국전력의 최하위 추락을 막지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경기 의왕시 한국전력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서재덕은 “라이트로 뛰고 싶다는 소망도 이뤘고, 주장으로 미련없이·후회없이 배구를 했으니 올 시즌은 제게 기억에 남는 시즌”이라며 특유의 환한 미소로 답했다.

■올스타전 ‘덕큐리’

선수에 대한 주목도는 대개 팀 순위가 얼마나 높으냐에 달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이 시즌 내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서재덕은 올 시즌 V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됐다. 올스타전 남자부 팬투표 1위 선수의 영예를 얻었고, 지난 1월10일 올스타전 현장에서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묘사된 밴드 퀸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본딴 ‘덕큐리’로 등장해 팬들의 큰 환호를 받았다.

서재덕은 올스타전 당시의 심정에 대해 “사실 부끄러우면서도 조금 걱정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올스타전 홍보 영상에서 처음 등장한 덕큐리를 올스타전 당일에도 보여줘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서재덕은 “올스타전을 즐기라고들 하는데,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과연 내가 올스타전을 즐길 수 있을까’ 싶었다”며 “팀 성적은 좋지 않은데 내가 팬들에게 너무 가벼워보이면 반응이 좋지 않을까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덕큐리에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지 않았다. 그가 ‘에~오’라고 선창하자 대전 충무체육관을 가득 메운 배구 팬들은 기쁜 마음으로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서재덕이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를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팬들이 서재덕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낸 것은, 한국전력이 고전하는 가운데서도 서재덕이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팬들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서재덕은 이번 시즌 자신의 ‘1경기 최다득점 기록(41점)’을 새로 세웠고, 팀 내 공격 점유율이 다른 팀 외국인 선수에 버금가는 30% 초중반대에 달했다. 우리카드에서 트레이드돼 온 레프트 최홍석이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최근 서재덕의 부담이 줄긴 했지만, 외국인 선수 대신 라이트 포지션에서 팀의 주공격수 역할을 해야했던 서재덕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왼손 공격수로 성균관대 재학 때까지 주로 라이트로 뛰었지만 프로에선 주로 레프트로 뛰었던 서재덕은 “내심 프로에서도 라이트로 뛰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마추어 때와 달리 몇달간 연달아 경기가 열리는 프로 무대는 체력소모가 심하다”며 “프로에서는 뛰지 않던 라이트로 시즌을 치르다보니 체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서재덕은 한단계 성장했다. 서재덕은 “시즌을 치르면서 매 순간 100%를 쏟는게 능사가 아니라 강약을 조절해야한다는 걸 깨달았다”며 “접전 상황에서 결정적인 공격을 해야하는 상황을 많이 겪으면서 기술도 많이 향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이끌었던 한국전력의 젊은 선수들도 함께 성장했다. 서재덕은 “시즌 도중에 합류한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이 잘 융합하면서 우리 팀의 강점인 수비가 살아났다”며 “특히 갑작스레 주전 세터를 맡게된 (이)호건이는 볼 분배를 비롯해 여러모로 성장한 것이 눈에 보인다”고 했다.

대학 시절부터 프로에서까지 오랜 시간 한솥밥을 먹었던 ‘영혼의 단짝’ 전광인(28·현대캐피탈)과의 이별도 이제는 아쉽지 않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도 친정 한국전력에 남았던 서재덕과 달리 전광인은 올 시즌을 앞두고 FA가 되자 팀을 옮겼다. 서재덕은 “광인이는 배구할 때 눈빛만 봐도 잘 아는 사이였고 팀에도 도움이되는 선수였기에 떠났을 때 아쉬웠다”면서도 “지금은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다. 서로 응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한국전력이 수원 홈에서 한국전력에 현대캐피탈을 3-0으로 꺾은 지난달 7일 5라운드 맞대결에서 서재덕이 선보인 세리머니를 떠올리니 미련이 없어진 건 확실해 보였다. 물론 “서로 다른 팀에서 만나더라도 미안해 말고 화끈하게 세리머니하자”라는 서로간의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구 여정은 잠시 멈추지만

서재덕은 쉼없이 달려온 배구 선수 생활을 잠시 멈춘다. 이르면 다음달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될 예정이다. 약 2년간 실전을 치르기 어렵게 되는게 아쉬울법도 하지만 서재덕은 “새로운 경험도 될 수 있고 선수생활에도 터닝포인트가 되리라 믿기에 걱정은 안한다”고 말했다. 다음 시즌 자신이 없는 한국전력 팀에 대해서도 “새로 합류한 (최)홍석이 형이 팀을 이끌고 올 시즌 성장한 (이)호건이, (김)인혁이가 뒤를 잘 받쳐 주리라 믿는다. 좋은 외국인 선수만 합류한다면 다음 시즌 경쟁력있는 팀이 될 것”이라며 걱정하지 않았다.

서재덕이 의무복무 기간 동안의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할 수 있음을 올 시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서재덕은 “일과 후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한다. 오래도록 배구를 할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싶다”며 “한국전력에서 오래 뛰면서, 20대 청춘을 바친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팀을 향해 성원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좋은 날도 많았지만 힘든 일도 많았는데, 늘 저와 한국전력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선수가 되도록, 한국전력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