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머신을 타자. 시간을 1965년으로 맞추고 목적지를 브라질 상파울루로 잡으면 당대 한국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국제 미술전 사상 한국 최초 심사위원이던 김병기를 비롯해 김환기, 이응노, 김창열, 박서보 등의 작품이 그해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됐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지난 5일부터 열리고 있는 김병기 3주기 기념전 ‘김병기와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그 시간 여행을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전시다. 2022년 작고한 한국 추상미술 1세대 김병기는 60년 전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상파울루 비엔날레는 베니스 비엔날레 등과 함께 세계적인 비엔날레 중 하나로 꼽힌다.
김병기는 작가이면서 미술평론가, 행정가였다. 1961년엔 정부로부터 제2회 파리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선정됐고, 1964년에는 한국미술가협회 이사장으로 당선돼 다음해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가 됐다. 70여명의 커미셔너 중 15명뿐인 심사위원이 된 건 상파울루로 날아간 뒤의 일이다. 김병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작가로 당시 30대였던 현대미술 작가 박서보, 김창열, 정창섭을 선정했고, ‘현대미술만 배려한다’는 항의에 서양화가 권옥연과 추상화가 이세득, 조각가 김종영, 전통회화의 이응노를 추가로 선정했다. 특별실에 출품한 김환기까지 한국 작가 9명이 직·간접적으로 상파울루에서 선을 보이며 세계에 한국 미술을 알리게 됐다. 이들은 2023년 박서보를 마지막으로 모두 별세했다.

전시는 그 과정을 본떴다. 전시장 1층에는 김병기의 작품뿐 아니라 그가 쓴 글이 담긴 1950~1960년대 ‘문학예술’, ‘신태양’, ‘사상계’, ‘새벽’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1954년 나온 ‘문학예술’ 창간호에는 김병기가 쓴 ‘화성 피카소의 생애와 사상’이 실렸다. 어떤 책자는 책장을 넘기면 으스러질 정도로 오래돼 전시장에서 그의 글 내용을 모두 볼 수는 없지만, 해박한 평론가 김병기의 면모를 짐작할 수는 있다. 전시 작품들도 시대를 넘나든다. 그간 공개되지 않던 1970년 미국 사라토가 거주 시절 그린 스케치부터 곧게 뻗은 흰 선이 인상적인 2018년작 ‘메타포’ 까지 다양하다.
2층으로 올라가면 쟁쟁한 한국 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이 총 45점 전시돼 있다. 1965년 상파울루에서 전시된 작품도 총 5점이 있다. 김환기의 ‘Echo’ 연작 중 1번과 3번, 9번까지 3개 작품과 김창열의 ‘제사 Y-9’, 비엔날레 한국관 책자 수록작이던 이응노의 ‘구성’이다. 김환기의 ‘Echo 1’은 ‘Biennial of Sao Paulo’라는 문구와 비엔날레 출품 당시 작가명, 작품명, 크기와 재료, 가격, 주소가 적힌 꼬리표까지 남아 있던 상태로 발견됐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은 이응노의 1960년작 ‘구성’, 김창열의 1964년작 ‘제사 Y-9’는 비엔날레 한국관 책자에 소개된 작품이다.

60년 전 작품을 찾는 것은 전시를 준비하는 쪽에서도, 작가의 유족들에게도 쉽지 않았다. 다만 책자에 남아있는 출품작과 유사한 작품들이 여럿 발굴돼 전시를 빛내고 있다. 권옥연의 1962년작 ‘Progress’는 비엔날레 도록에 수록된 출품작과 화면 구성이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종영의 조각 ‘작품 65-2’는 비엔날레 출품작이자 리움미술관 소장품인 ‘작품 65-1’과 같은 시리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김종영은 1961~1963년 숭례문 보수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고목재를 ‘작품 65-1’과 ‘작품 65-2’에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미술의 세계 진출을 견인한 김병기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 세미나도 오는 22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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