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 유적 일대 발굴조사 성과

탄소연대 측정 결과 568~642년 추정

목간·삭설 총 329점도 함께 발견돼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굴된 횡적(가로 피리). 국가유산청 제공

 

약 1500년 전 삼국시대 때 쓰인 관악기 실물이 사상 처음 발굴됐다. 국내 최초의 편철(編綴) 목간(글씨를 쓴 나무 조각)을 비롯해 특정 발굴 조사 기간 중 가장 많은 수의 목간도 함께 발견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 성과를 이같이 밝혔다. 연구소는 부여군과 함께 1982년부터 백제 마지막 수도 사비의 왕궁지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 일대의 발굴조사를 해왔다.

충남 부여군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공개된 횡적 실물의 모습. 부여 ❘ 윤승민 기자

 

2024~2025년 진행된 16차 조사에서는 가로로 불어서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가로 피리) 1점이 출토됐다. 출토 장소는 조당(朝堂·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고 조회·의례를 여는 곳) 건물로 파악되는 곳 인근의 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구덩이 바닥이었다. 횡적과 함께 묻힌 유기물에서는 꽃가루와 인체 기생충란 등이 발견됐다. 구덩이는 조당에 딸린 화장실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황색 대나무로 만들어진 횡적은 오랜 시간 다른 유기물과 함께 묻혀 납작하게 눌린 채 발견됐다. 탄소연대 측정, 함께 묻힌 다른 유기물 등의 정보를 종합하면 횡적의 제작 시기는 568~642년으로 추정된다. 횡적이 유기물에 밀폐돼 산소와의 접촉이 차단되면서 약 1500년간 형태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백제 횡적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한 사례이자, 삼국시대의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약 2000년 전의 현악기, 타악기 등이 발굴된 적은 있었으나 삼국시대 관악기는 발굴된 적이 없었다.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굴된 횡적의 엑스레이 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발견된 횡적의 총 길이는 22.4㎝였다. 한쪽에는 인위적으로 절단한 흔적이 남았다. 구멍은 4개가 남아있었는데 3개는 인위적으로 뚫린 지공(指孔·손가락 구멍), 다른 하나는 입김을 불어 넣는 취공(吹孔)이었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한쪽 끝이 막힌 구조로 판명됐는데, 이는 세로로 부는 관악기인 종적(縱笛)과 횡적을 구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중국의 여러 문헌은 백제의 ‘적’(笛·피리)을 ‘취공 포함한 7개의 구멍이 있는, 길이 33㎝ 내외의 가로로 부는 대나무 악기’라고 기록했다. 발견된 횡적은 누군가가 약 10㎝를 부러뜨린 뒤 구덩이에 버린 것으로 보인다. 구덩이에서는 남은 조각이 발견되지 않았다. 횡적이 부러지고 구덩이에 버려진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굴된 가로피리의 치수(단위: ㎜). 국가유산청 제공

 

백제 왕궁 추정지에서 발견됐다는 점, 일본 역사서 <일본후기> 등에 일본 왕궁에서 백제 음악이 연주될 때 횡적이 중요한 악기라 기록된 점을 통해 횡적의 높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소는 3차원 측량과 프린팅 기술을 통해 취공 포함 7개의 구멍을 지닌 길이 31㎝의 횡적 복원품도 선보였다. 현존하는 소금(小笒)과 형태와 소리가 비슷하다.

연구소는 “횡적이 백제 궁중음악과 악기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며, 백제의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굴된 인사 기록이 적힌 목간. 국가유산청 제공

 

16차 조사에서는 목간과 삭설(목간의 글씨를 삭제·수정하려 깎아낸 조각) 총 329점도 함께 발견됐다. 국내 단일 발굴 조사에서 나온 목간 중 수가 가장 많다. 일부 목간에 남은 경신년(庚申年·540년), 계해년(癸亥年·543년) 등의 글씨와 탄소 연대 측정 등을 통해 538년 사비 천도 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목간에 구멍을 뚫은 뒤 끈으로 엮었을 편철 목간의 일부도 국내 최초로 발견됐다. 특정 인물에게 공직을 부여했다는 내용이 남아 인사 문서로 추정된다. 편철 목간은 고대 한반도에서 자생하지 않은 삼나무가 쓰인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목간에서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백제 관직의 명칭도 적혔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여겨져 온 ‘전(畑)’자도 목간에서 발견됐다. 연구소는 “일본보다 백제에서 먼저 ‘畑’이 사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간에는 입동(立冬), 사시(巳時·오전 9~11시) 등도 기록됐는데, 백제가 역법을 이용해 절기와 시간을 파악했다는 증거다. 연구소는 “백제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과 기술 체계로 운영된, 고도화된 행정국가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기간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이번 발굴 성과와 추가 연구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다.

부여 |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발굴된 관등·관직이 표기된 목간. 국가유산청 제공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