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승, 평균자책, 탈삼진… KBO리그 투수 개인 성적표 최상단은 외인 투수들이나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들이 굳건히 지켜온 자리다. 이영하(22·두산)는 2019년, 17승으로 다승 공동 2위에 올라 그 공고한 벽을 깼다. 평균자책(3.64·15위)이 조금 높고 투구이닝(163.1이닝·17위)이 조금 적다고 하지만 이영하의 성과를 낮춰보는 이는 드물다. 프로에서 겨우 세번째 시즌을 치른, 여전히 젊은 투수인데다 최근 은퇴를 선택한 윤석민(33) 이후 한국 야구에서 보기 드물어진 우완 정통파 에이스 계보를 이어주리란 기대도 크기 때문이다.
이영하는 한 해 승수만 많이 쌓은 게 아니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했다. 두산 4·5선발로 2019년을 맞이한 이영하는 프리미어 12에 출전한 한국의 차세대 우완 에이스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2017년 데뷔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선물처럼 안은 이영하는 최근 서울 한 호텔에서 ‘스포츠경향’과 한 해를 돌아보는 인터뷰를 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오른손 에이스가 없다는 말은 나도 많이 들었다. 저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스스로도 예상못한 17승…배우면서 좋아졌다
이영하는 2018년 10승을 거두며 두산 선발 로테이션에 새 얼굴로 떠올랐다. 그 덕에 2019년 4·5선발로 미리 낙점됐지만, 17승을 거둘 것이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프링캠프 때 시즌 목표를 농담삼아 ‘18승’이라 했던 이영하도 마찬가지였다. 이영하는 “잘하고 싶었다는 생각이야 했지만 결과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시즌을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 해가 꿈같이 지나갔다”고 했다.
‘승운이 따랐다’고만 하기엔 9월 이영하의 존재감은 컸다. 두산이 극적인 정규시즌 역전 우승을 위해 잡았어야 했던 중요한 고비 때마다 이영하는 마운드에 있었다. 9월19일, 당시 선두 SK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이영하는 9이닝 3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공동선두가 된 뒤 첫 경기였던 9월29일 잠실 LG전에는 선발 이용찬의 부상 강판 뒤 마운드에 올라 6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냈다. 두산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한 10월1일 NC와의 잠실 최종전, 마지막 투수이자 승리투수 역시 9회초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이영하였다.
이영하는 “외인 선수들의 루틴을 많이 봤다. 무조건 따라하기보다는 몇가지를 참고했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등판 후 다음날 하는 캐치볼, 격일로 하는 보강운동을 시즌 도중 시작한 덕을 봤다. 한편으로 ‘멘탈’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이영하는 “어떤 기술이든 마운드 위에서 제대로 보여주려면 멘탈이 좋아야한다는 걸 느꼈다”며 “담대하고 씩씩하게 던져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 결과가 좋아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고 말했다.
■터닝포인트 된 ‘벌투 논란’
2019년 이영하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6월1일 수원 KT전에 선발로 나서 4이닝 동안 공 100개를 던지고 13실점한 뒤 강판됐다. 이영하가 이미 2회까지 8점을 내줘 승부의 추가 일찍 기운 상황에서, 계속 마운드에 세워 공을 던지게 한 두산 벤치에 ‘벌투 논란’이 따라붙었다. 프로야구 투수 한 경기 최다 실점(14점)에 버금가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 경기를 빼면 이영하의 평균자책은 3.64에서 2.99까지 내려가고, 순위는 8위까지 오른다.
이영하는 이날을 자신의 ‘터닝포인트’로 삼았다. 이영하는 “사실 이날 전까지 성적이 좋아서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이영하가 1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며 대량실점 후에도 강판하지 않았다. 이영하는 “아마 2회 마치고 마운드에 내려갔다면 정신을 못차렸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가 배운 것은 “선발투수라면 1회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1회와 6회 공이 같을 수가 없는 건 당연하고, 1회 힘을 뺀다고 8회까지 공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는 것. 이영하가 바라는 많은 이닝을 던지기 위해서 초반부터 힘을 빼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영하는 “선발투수라면 초반부터 전력을 다해 팀이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해야한다는 걸 배웠다”며 “많은 이닝을 던지고 싶은 욕심은 여전하지만, 투구이닝을 의식하지 않고 던지는 게 중요하단 걸 배웠다”고 했다.
■이영하가 꿈꾸는 올림픽, 그리고 에이스의 자리
이후 이영하는 여름 들어 부침을 겪긴 했지만, 9월 이후의 활약을 바탕으로 대표팀 유니폼도 입었다. 2019 프리미어 12에서는 선발로 중용되진 않았지만, 불펜의 조커로 대표팀 투수들 중 가장 많은 5경기에 등판해 8.1이닝 1실점, 평균자책 1.08로 대회를 마쳤다.
고우석(LG)과 이승호(키움) 등 또래 친구들이나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양현종(KIA) 등 베테랑 에이스들과 가까이서 함꼐 야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뜻깊은 자리였다. 일본과의 결승전 마운드에도 올랐다. 한국은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및 결승전에서 모두 패해 아쉬움을 남겼으나, 이영하는 “한·일간 타자 수준차가 크지는 않았다. 일본 투수들이 우리보다 좋은 공을 갖고 있는 건 맞지만 우리 타자들도 공략할 수 있다”며 새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본과의 재대결을 별렀다.
올림픽 무대에서 다시 일본과 맞붙으려면, 이영하는 다가올 2020년에도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활약해야 한다. 두산이 2020시즌 외인 투수 2명을 교체하면서 그가 짊어질 부담감이 커질법도 하다. 하지만 이영하는 “우리 팀은 매년 선수 유출이나 변화를 겪었는데도 강했다. 저 또한 다른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려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며 “앞으로 1~2년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팀 우승만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들이 모두 왼손이었다. 이제 오른손 에이스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며 “올해는 제게 운이 많이 따르기도 했지만, 앞으로 더 잘해서 대표팀 에이스로 거듭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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