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문우람 사건으로 본 위계 폭력의 흑역사
2000년대 이전 만연했던 폭행
‘성적 향상’ ‘기강 확립’ 정당화
보는 눈 많아지고 인식 변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 은밀한 폭력 계속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조재범 전 코치에게 폭행당한 심석희는 최근 “어렸을 때는 아이스하키채로 맞았고, 올림픽 전엔 ‘이러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맞았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3년 반 전 일이었지만 전 프로야구 선수 문우람이 팀 선배로부터 야구방망이로 폭행당했다고 주장했고, 가해자 이택근은 36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0년대 들어서도 프로 팀과 국가대표에서도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일련의 사건으로 드러났다. ‘맞으면서 배운다’는 통념이 있던 수십년 전부터 있었던 스포츠계의 선후배 간, 지도자·선수 간 폭행 문제가 최근까지 이어진 것으로 드러나 충격은 더했다.
이택근·문우람 사건과 비슷한 사건은 2009년 8월 LG 2군에서 있었다. 당시 투수 서승화가 훈련 도중 후배 외야수 이병규(현 롯데)를 방망이로 때린 사실이 드러났다. ‘후배가 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행된 폭행에 이병규는 이마에 피를 흘리는 상처를 입었다. 감독·선수 간에는 2002년 당시 KIA 포수 김지영이 폭로한 김성한 KIA 감독의 방망이 폭행이 있었다. 김 감독이 방망이로 머리를 가격하는 바람에 김지영은 과다 출혈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남자배구 박철우(삼성화재)도 국가대표 시절 폭행을 당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09년 9월 태릉선수촌에서 훈련 도중 대표팀 이상열 코치로부터 뺨과 복부를 맞았고, 박철우는 다음날 상처를 입은 채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여자농구 박혜진(우리은행)도 2011년 폭행의 피해자가 됐다. 당시 김광은 감독이 12연패를 당하자 경기 후 라커룸에서 목을 조르고 몸을 밀치며 폭행해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2000년대 이전에는 더 많은 폭행 사건이 있었다. 성적을 내려면 규율을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 폭행도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있던 탓이다. 폭행은 ‘기강 확립’ 내지는 ‘사랑의 매’라는 미명하에 묵인됐다. 1979년 연세대 재학 중이던 최동원은 체벌에 못이겨 잠적한 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1992년 효성 여자배구단이 체벌을 당해 하반신에 멍이 든 상태에서 경기를 치러 충격을 줬다. 1983년 청소년 축구 대표팀 4강 신화를 이끈 박종환 감독은 강압적인 지도로 악명이 높았는데, 급기야 2013년 성남FC 감독 때도 선수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켜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관계자가 아닌 팬들이 경기와 훈련을 지켜볼 수 있는 길이 늘었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인식이 분명 이전보다는 뚜렷해졌다. 그럼에도 선수들의 폭행은 과거 세대에 그친 게 아니었다. 심석희가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현역 선수인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은 폭행 가해자라는 의혹을 받아 도마에 올랐다. 지난 5월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는 특정감사 결과, 이승훈이 2011년과 2013년, 2016년 후배 선수를 때렸다고 밝혔다. 넥센 투수 안우진은 휘문고 재학시절 동기들과 함께 후배를 폭행했고, 프로 지명 이후 이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고 구단은 50경기 출전 금지의 자체 징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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