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호주 케언즈 원주민 혈통의 작가 다니엘 보이드(43)와 한국의 여성주의 작가 장파(44). 출신이 서로 다른 작가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건 신작들은 서로가 다르면서도 닮은 구석이 있다.

보이드의 신작 39점이 전시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는 자연스레 이름이 같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보이드가 주목하는 건 조이스의 소설이 아닌 1958년 호주 정부가 만든 학습 만화 시리즈 중 하나다. 만화 속의 호주 식민주의자들은 호주 대륙 내륙에 바다가 있으리라는 전설을 따라 탐험하던 중 위기에 빠지지만, 피네간이라는 만화 속 인물 덕에 구조된다. 보이드는 식민주의 기반의 세계관이 만화를 통해 전 세대에 내면화되는 과정이 문제라고 느낀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다니엘 보이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에 전시된 ‘무제(STGLWOAGLM)’(2025)와 ‘무제’(FWIGSKWIK)(2025). 국제갤러리 제공

 

만화 속 한 장면이 ‘무제(IMTWNAF)’(2025) 등에서 재현된다. 호주 원주민을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노래의 악보 또한 그림의 소재가 된다. 불규칙하게 배치된 동그라미는 작품부터 출입문에 이르기까지 전시장 곳곳에서 눈에 들어 온다. ‘점’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원’이라고 말하는 이 존재는 렌즈를 상징한다. 어떤 한 장면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을 나타낸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난해한 문장으로 써내려 간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와 전시는 이 지점에서 닮아 있다.

‘무제(PCSAIMTRA)’(2025)는 취조실에서 주로 쓰이는 단방향 거울 5개에 보이드 특유의 빈 원을 여럿 새겨 넣었다. 호주 대륙을 처음 밟은 백인들, 호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원주민을 구경겨리처럼 여겼던 역사가 떠오른다. 흰 포세이돈 조각상을 그려 놓고 특유의 검은 점을 그려 넣은 또다른 ‘무제’ 연작 2점에서는 그리스·로마 때의 조각상을 모두 흰색으로 칠한 뒤 전시했던 대영박물관의 관행을 비튼다. 어떤 전설은 그 본질이 아름답지만,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그 본질을 제 맘대로 해석하려고 했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피네간의 경야’ 를 연 작가 다니엘 보이드. 국제갤러리 제공

 

장파는 역사 속의 ‘아름다움’ 개념에 공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연작이자 전시의 이름인 ‘Gore Deco’대로 여성의 신체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신작 46점이 전시장을 메웠다. 서구 사상의 근간인 십자가나, ‘삼위일체’를 뒤집은 듯한 역삼각형 구도를 띈 어떤 작품은 그 형태만으로 오래도록 공고했던 상징 체계를 전복하려는 듯 보인다. 어떤 작품에는 인간의 내장을 표현한 듯한 그림에 여성의 머리를 단 뱀, 마녀처럼 보이는 그림이 낙서처럼, 문신처럼 새겨져있다. 여성은 마녀로, 동양인은 야만인으로 여기며 혐오해 온 역사를 재현한 것이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파 개인전 ‘Gore Deco’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피처럼 붉은 빛이 가득한 그림들은 편안하게 보기는 어렵다. 장파는 이런 그림들을 가리키며 “유머러스한 작품”이라는 농담을 빼놓지 않았다.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소설 <입싼 보석들>에서 이름을 따 온 그의 작품 ‘Gore Deco-The Indiscreet Jewels #2’(2025)은 인체의 내장 같은 그림에 프랑스어 문구가 쓰였다. “이 모든 상황이 지겹다.” 오래 고착화된, 여성을 향한 고정적인 시선을 냉소적으로 조롱하는 것 같다.

전시에는 붉은 색이 많이 쓰였지만 색채의 채도는 높은 편인데, 장파는 “파스텔톤을 주로 사용했다. 보통 소녀적, 여성적 유치함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일부러 유치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해서 유치함과 여성성을 등치하는 게 맞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검은 선으로 드로잉처럼 그려진 작품에서도 장파 특유의 그림체가 재현된다.

두 전시 모두 2월15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파 개인전 ‘Gore Deco’에 전시된 ‘Gore Deco-The Indiscreet Jewels #2’(2025). 윤승민 기자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장파 개인전 ‘Gore Deco’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