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국회 의장실에서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벌이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오늘까지 최종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체 수정안을 내일 제출하겠다.”(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민주당 단독 수정안 해도 된다. 우리는 아껴서 살림살이하면 된다. 답답한 건 국회의원들이다.”(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시한 내년도 예산안 처리 기한을 하루 앞둔 14일 여야는 민주당의 수정안 단독 처리를 두고 벼랑 끝 대치를 벌였다. 민주당은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하며 단독 처리를 자신했고, 국민의힘은 ‘그래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맞섰다. 막판 쟁점인 법인세 최고세율에서 상대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해석된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위와 같이 말하며, 수정안의 내용을 밝혔다. 정부 예산안 639조원에서 0.7%(약 4조원)를 감액했다면서 대통령실 이전 비용 등 민주당이 반대하는 사업 예산을 2조원 가까이 줄이고 나머지는 예비비를 크게 삭감했다고 했다.

 

본회의에 상정된 예산부수법안 중에서 민주당이 전날 발표한 ‘국민감세안’은 통과시키고,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 등 여야가 잠정 합의만 한 법안들은 예산안 처리 후 논의하겠다고도 했다. 민주당표 ‘국민감세안’에는 영업이익 2억~5억원 구간 중소·중견기업의 법인세율을 20%에서 10%로 낮추고, 종합소득세 최저세율(6%) 적용 구간을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에서 1500만원 이하로 높이는 내용 등이 담겼다.

 

민주당은 수정안 단독 처리에 자신감을 보였다. 당 지도부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난달부터 자체 예산안을 만들어 최근 300페이지 넘는 분량으로 부속 작업 준비까지 마쳤다. 기획재정부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과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 수준이란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원래 예산안의 야당 단독 처리가 어려운 건 기재부의 도움 없이 복잡한 시트 작업(명세서 작성) 등을 하기 어렵다는 평가 때문이었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이런 준비까지 문제 없이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뜻대로 삭감한 예산을 실제 처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법인세 등 쟁점에서 여당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2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민주당은 ‘초부자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15일 오전에도 정부·여당과 협상을 이어가지만, 오후에도 성과가 나지 않으면 단독 수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예산안 단독 처리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단독 처리한) 예산에 문제가 있으면 민주당에 뒤집어 씌우려고 한 것”이라며 “단독 처리는 별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할테면 하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진짜로 갑질이고 힘자랑이고 나라 재정, 경제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라며 “후폭풍을 감당 못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수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켜도) 정부는 답답하지 않다. 1조8000억원 정도 감액된 것이어서 정부 사업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올해) 하반기에 쓰지 못한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돌려서 쓰면 된다”며 “답답한 것은 지역 예산을 증액하지 못하는 국회의원”이라고 말했다. 예산 증액은 여야 합의 하에 정부가 동의해야 예산안에 반영할 수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 지역구 의원이 훨씬 많은데 ‘주민에게 필요한 거(예산) 하나도 못했다’ 이렇게 되겠지”라며 “지역구 개판 돼도 관계없다 생각하면 (단독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안 단독 처리는 민주당이 더 손해라고 주장하며 법인세 양보를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어차피 윤석열 대통령이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터라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잘못된 예산의 책임을 민주당에 미룰 수 있고, 이번에 처리 못한 예산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 기재부가 주도권을 쥐기 때문에 불리할 것이 없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벼랑 끝 대치가 이어지면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 예산안 처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정치권엔 여야 모두 부담이 적지 않은 만큼 민주당 단독 처리보다는 김 의장이 말한 데드라인(15일)을 넘기더라도 재차 여야 합의를 시도하리란 전망이 더 우세하다. 김 의장은 오는 16일 계획된 일정을 취소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 예산에 돈 보태는 걸로 먹고 사는데, 그걸 전혀 못하면 의원들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