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 관여 ‘이코모스’ 최재헌 한국위원장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바깥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종묘와 세운4구역. 정효진 기자

 

고도는 ‘권위의 상징’···관광객이 내려다본다면 ‘신성’해 보일까
무조건 짓지 말라 아냐···서울시, 영향 평가받고 개발 계획 공개해야
국가유산청 ‘지정 해제’ 우려엔 “시 계획 제대로 확인도 않고 언급”

“종묘는 우리나라의 신성한 장소로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신성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최재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62·건국대 지리학과 교수)은 지난 10일 전화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종묘 앞 세운4구역에 최고 142m 고층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서울시가 개발계획을 바뀐 상황을 두고, 유네스코가 중시했던 종묘의 신성성을 해치는 개발이 되어선 안된다고 한 것이다. 이코모스는 세계유산 등재를 심의·결정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다. 관련 전문가들이 모인 비정부기구(NGO)로, 세계유산 등재 과정 등에도 관여한다.

최 위원장은 “종묘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인정받은 OUV(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중요하다”며 “종묘는 우리나라의 제례와 조선 왕실의 건국 이념들이 다 들어있는 곳으로 신성한 장소로서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세계유산위원회가)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세계유산위원회는 홈페이지에서 각 세계유산이 인정받은 OUV를 설명했는데, 종묘를 두고는 “엄격한 왕실 감독 하에 조상 숭배라는 유교 이념과 의례 형식을 충실히 준수하여 지어졌으며, 여전히 조선 시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6세기 이후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교 왕실 조상 사당의 뛰어난 예”라고 적시했다.

최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고도가 권위의 상징”이라며 “종묘 정전은 경사로가 있어 (방문자가) 조상을 (위로) 우러르면서 가게 돼 있다. 조상 입장에서는 자손들을 내려다보는 시야”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종묘에서 주변을 바라볼 때 비쭉 솟은 건물이 있고, 관광객들이 (왕의) 신위가 모셔진 건물을 (고층에서) 내려다본다면 이게 신성성을 확보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고층 건물에서 관광객들이 종묘를 내려다보면서 느낄 아름다움도 고려해야 한다는 서울시 등 일각의 주장을 두고 “현대적 시각”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종묘와 영녕전에서 외부를 바라보면 주변을 둘러싼 숲이 보인다”며 “그 숲 위로 빌딩이 보이지 않도록, 주변을 개발할 때 운용의 묘를 기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무조건 건물을 짓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종묘에서 바라보는 시야에 고층 건물이 들어오는지는 충분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며 “새로 지을 건물이 종묘에서 보는 시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시도 개발 청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그러면서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종묘와 세운4구역이 180m 이상 떨어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서울시 내 지정문화유산 100m 이내)에 속하지 않아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유산위원회에서 나오는 결정을 따르지 않고 예외를 자꾸 둔다면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종묘의 신성성이 침해돼 세계유산 지정이 해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는 “세계유산위원회는 유산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판단하면 ‘위험에 처한 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한다”며 “등재에는 당사국의 허락이 들어가야 한다. 한국이 방어 논리를 갖고 있으면 등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유산청도 서울시의 개발 계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인하지 않고 ‘세계유산 지정 취소’ 우려를 언급하는 것 같다”며 “서울시와 정부 양측이 너무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있다”고도 했다.

최재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위원장. 이코모스 홈페이지 갈무리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