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한국고고학회장(왼쪽)과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관련 학회 및 문화유산 관련 협회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묘 앞 고층 개발 시도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관련 27개 학회와 문화유산 관련 6개 협회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 앞 세운4구역에 최고 142m 고층빌딩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서울시의 개발계획 변경을 규탄하는 공동 입장을 냈다.

한국고고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등 27개 학회와 한국국가유산실측설계협회, 한국문화유산협회 등 6개 협회는 12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 건물 최고 높이를 71.9m에서 145m로 높이는 개발계획변경안을 고시하자, 한국고고학회가 지난 7일 이에 반대하는 취지의 성명을 낸 데 이어 역사학, 인류학계 등에서도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

이들은 “세계유산 종묘의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고층 개발의 시도를 단호히 규탄한다”며 “고층 건물의 배치는 종묘의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삶에서 역사적 전통과 기억을 제거하고 문화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종묘가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그 주변의 난개발을 자제하면서 경관과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종묘 앞 고층 개발은 밖에서 세계유산을 바라보는, 그리고 세계유산에서 사방을 바라보는 경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종묘 주변에 고층 건물을 배치하여 경관을 훼손하지 말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는 그래서 결코 쉽게 넘겨버릴 말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학회 및 협회는 “종묘 주변의 고층개발과 고도 상향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업 내용의 사전 공개와 함께 독립적인 전문가 평가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며 “건물의 높이와 배치에 관한 공개된 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성급한 인허가는 지양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이들은 “이것(세운4구역 고층 개발)이 선례가 되어 같은 5대 궁궐과 조선왕릉의 주변도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둘러싸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며 서울시에 ‘종묘 인접지역 층고 상향 규제 완화 철회, 종묘 경관에 영향 줄 수 있는 고층 건물 인허가 중단, 종묘 주변 사업계획 공개, 종묘 경관 훼손 최소화를 위한 건물 배치와 높이 기준 마련’을 요구했다.

회견에 참석한 이연경 한국건축역사학회 홍보이사(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어떤 유산은 필요에 따라 건물만 보존하거나, 건물을 고쳐서 활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종묘와 같은 세계유산은 보존의 강도가 가장 높으므로 경관까지 보존해야 한다”며 “종묘는 건물뿐 아니라 종묘제례라는 무형유산까지 함께 보존된 곳이라 볼 수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이 새로 생긴 논리까지 보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성명에 나선 학회와 협회는 향후 종묘 주변 개발 진행 경과에 따라 추가 입장을 내거나 학술 행사 등을 여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