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어떻게 진보하고 왜 퇴보하는가

파리드 자카리아 지음 | 김종수 옮김

부키 | 600쪽 | 3만8000원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난 1990년대가 되자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인류 문명이 최고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이 더해져 세계인이 평화로운 한 마을 주민처럼 살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발 관세전쟁은 기대와 다른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냉전 시대 이후의 세계는 초강대국 미국 일극 체제였다. 일극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개방성과 자유주의도 압박을 받았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력에 대한 신화를 무너뜨렸다. 세계적인 불황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포퓰리즘 운동이 급부상했다. 저자는 “포퓰리즘 운동은 암울한 현재와 ‘좋았던 시절’을 대비시키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노동계급의 경제적 곤란을 개방적인 이주 정책과 국제적인 산업 경쟁 탓으로 돌린다”면서 “세계화의 약속이 허망하다고 느끼는 수백만명의 사회적 경제적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이용했다”고 썼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을,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배척의 대상으로 삼았다. 좌파가 점차 중도화되면서, 우파는 차별화를 노리고 정체성 정치에 더욱 힘을 쏟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반엘리트, 반세계주의, 민족주의적 발언으로 미국인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던 건 이 때문이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한 SNS는 정치 민주화의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소셜미디어는 빠르게 대중적 에너지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유용할 수 있으나…파편화되고 지도자가 없다는 특성상 장기적으로 정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익명성을 앞세운 폭력적 군중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기에 반(反)자유주의적 성향에 취약할 수 있다”고 했다. SNS를 통한 극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과대표되는 한국 정치의 현실과도 맥이 통한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