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미술품 중 하나는 이우환(89)의 ‘점으로부터 No. 800298’이다. 김상민 전 검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게 2023년 1월 이를 건네면서다. 법적으로는 이 그림의 대가성 등이 쟁점이 되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그림의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됐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와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 이 그림의 진위를 감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진품으로 감정했지만,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는 이 그림을 위작으로 감정했다. 이우환의 그림을 두고 위작 논쟁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2016년 6월30일, 이우환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전해부터 이우환 그림이 위작이 국내외에서 최소 150점 유통되고 있다는 파문이 일었다. 2016년 4월에는 이우환 그림을 위조한 총책이 일본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작품 13점을 압수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은 “모두 진품과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우환의 기자회견은 경찰의 판단과 달랐다. 그는 “저만의 호흡, 리듬, 색채로 그린 작품”이라며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전해부터 위작 논란이 일 때도 침묵하던 이우환이 이례적으로 문제가 된 작품 13점을 직접 감정한 뒤 경찰과 다른 입장을 내며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위작 논란과 함께 최근 법조계에서 소환된 또 다른 유명 작가는 천경자(1924~2015)다. 천경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유족 측이 최종 패소했기 때문이다.
천경자의 위작 논란은 이우환과 닮은 듯 다른데, 천경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유했던 자신의 작품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그림은 김제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유했다가 10·26 사건 이후인 1980년 정부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이를 진품으로 봤으나 1991년 그림이 공개되자 천경자가 위작이라 주장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16년 미인도가 천경자가 그린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천경자의 유족은 위작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달 9일 대법원에서 결론 낸 소송은 천경자의 유족 측이 “검찰이 위작 의견을 낸 감정위원을 회유하고,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허위사실을 감정위원에 알려 감정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건이다.
위작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싼 값이 매겨진 유명작가의 작품을 베껴 그리고 진품인 양 속여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게 목적이다. 유명작가의 그림이 위작 논란에 자주 휘말리는 건 그래서다. 위작이 많이 나오는 작가 중엔 이우환뿐 아니라 이중섭이 있다. 한국에서만, 그리고 현대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작가 미켈란젤로도 한때 돈을 벌기 위해 위작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실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왜 생길까. 미술품은 농산물이나 공산품과 달리 가짜를 가려내기가 어렵다. 위작 여부를 감정할만한 전문가 수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많지 않은 점도 관계돼 있다.
한 작가도 그림을 그리는 시기에 따라 기법이나 습관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는 한 작가 그림의 일관성을 완벽하게 가름하기 어려운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농산물·공산품처럼 고객에게 ‘진위를 가리는 요인’을 밝히기도 쉽지 않다.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알려지면, 누군가는 그 요소를 넣어 위작을 만들기 때문이다.
많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모두 기억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자신이 그림을 그린 기록을 정확히 남겨두지 않는다면 위작 판정을 작가가 부인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감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당장 그림을 사거나 팔기 원하는 수집가들이 ‘빠른 감정’을 요구하면 감정의 정확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위 논란이 벌어지면 이를 밝히길 원하는 여론이 한국 사회가 다른 나라보다 유독 크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는 해외보다 감정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적다는 점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해외는 전문 감정사나 단체, 기구가 있지만 국내는 그 수가 부족하고 이해관계자들과도 가깝다는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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