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관료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대통령이 공식 행정시스템이 아니라 비선을 통해 국정을 꾸려온 사실이 드러나자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허탈감에 휩싸여 있다.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마비된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 부동산·가계부채 대책, 미국발 금리 인상 등 산적한 경제 현안에 대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감도 느껴진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박근혜 정부의 잔여임기 1년4개월 동안 관료들의 보신주의와 각자도생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가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7일 재정당국의 국장급 인사는 “정권은 사실상 끝난 것 아니냐”며 “남은 1년 반 동안 솔직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장이 예산부수법안으로 법인세 인상안을 올리면 여당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기도 힘들뿐더러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면서 “현 정부의 정책과제는 멈췄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법 등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로 강조해온 경제 관련 법안의 추진도 어렵게 됐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가뜩이나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구조조정도 동력을 상실할 것 같다”며 “정치 불안정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점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경제부처 과장급 인사는 “비선 실세의 전횡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로 인해 국가나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게 된 것이 더 걱정스럽다”며 “이런 불신이 다음 정권까지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쟁당국 관계자는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갈수록 낮아지는 것을 느껴왔지만 이번에는 아예 수렁에 빠져버린 것 같은 막막함이 느껴진다”며 “박 대통령 개인의 비위나 행실과 관련한 문제야 어처구니없는 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정부와 공공에 대한 신뢰가 치명타를 입은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씨가 현재까지 드러난 것 외에 다른 정책결정 과정에도 개입한 것 아니냐는 불신감도 팽배해지는 분위기다. 경제부처 한 국장은 “대통령의 의견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정책을 수행해왔는데, 지금까지 대통령이 아니라 최순실의 말을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전율감을 느낀다”며 “언론보도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래도 원리원칙대로 돌아간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최순실 사태를 거치면서 대체 뭘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느낌이 든다”며 “보이지 않는 실세들이 각계에 손을 뻗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개각과 인적쇄신 가능성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레임덕’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내년 초 대대적인 개각이 있지 않겠느냐”며 “인사청문회는 안전한 인사로 가겠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모두 일을 손놓고 있다. 새로운 일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하던 일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문서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정부’ 같다”고 말했다. 다른 사회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모든 공무원들은 흔들리지 말고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라는 지침이 오늘 내려왔지만, 다들 업무가 손에 안 잡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병률·윤승민·정유진·장은교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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