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넥센과 한화의 준플레이오프(준PO) 2차전이 끝나고 난 뒤 방송 카메라에 재밌는 장면이 잡혔다. 포스트시즌들어 넥센 외야수 세 명은 경기가 승리로 끝날 때마다 외야 한가운데 모여 폴짝 뛰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날 중견수 임병욱과 우익수 제리 샌즈가 늘 하던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사이, 좌익수 김규민이 당황해 하며 멀뚱거리는 모습이 잡혔다. 9회말 수비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한 이정후 대신 갑작스레 경기에 투입돼 세리머니를 몰랐던 탓이다.
후에 김규민은 “(임)병욱이가 세리머니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그 장면을 두고 장난섞인 응원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준PO 4차전을 앞두고는 “병욱이가 아직도 세리머니를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직접 물어봐야겠다. 5차전까지 가지 않고 오늘 이겨서 세리머니를 선보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김규민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4차전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후 임병욱, 샌즈와의 세리머니를 실수없이 마쳤다. 그보다 더 빛난 건 타석에서의 활약이었다. 5-2 승리에 쐐기를 박는 2타점은 8회말 준PO 최우수선수(MVP) 임병욱에게서 나왔지만 결승타의 주인공은 김규민이었다. 넥센이 1-2로 뒤진 4회말 2사 만루에서 2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는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날려 경기 흐름을 확 바꿔놓았다.
이정후의 부상으로 생긴 공백을 메꾸고 결승타까지 기록한 김규민은 넥센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숨은 주역이었다. 그의 소금같은 활약은 포스트시즌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서건창에 이어 박병호 등 주전들이 줄부상을 당했던 전반기, 김규민이 혜성처럼 나타나 좌익수, 1루수 등 여러 포지션을 오가며 공백을 메웠다. 주전들이 모두 복귀하자 그의 위치는 다시 백업이 됐다. 타율 4할도 노려볼만 했던 한때의 폭발적인 기세에 못미치는 성적(타율 0.295, 3홈런 40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능력은 인정받았다.
부동의 주전 이정후가 준PO 2차전 수비 도중 갑작스런 부상으로 교체됐을 때 대체자로 투입된 건 김규민이었다. 고종욱, 박정음 등 다른 외야자원도 있었지만 넥센 장정석 감독은 “수비가 중요한 때이니만큼 김규민이 나선다”며 3·4차전에도 김규민을 선발 좌익수로 중용했다. 타순은 8번, 넥센 벤치는 타격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3차전에서는 6회말 1사 1·3루 기회에서는 대타 고종욱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김규민은 4차전을 앞두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찬스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좋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경기에서는 득점 찬스에서도 타석에 남아 끝내 일을 냈다.
김규민은 “포스트시즌에 나섰다는 사실보다는 (이)정후의 빈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했지만, 팬들은 넥센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어 기뻐하던 순간 만큼은 이정후의 공백을 잊었다. 이제 김규민은 플레이오프에서 더 멋지고 당당한 외야 세리머니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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