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 코치는 70보다 큰 숫자, 투수들은 두자릿수… ‘암묵적인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프로야구 선수단의 등번호에는 일관성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선수들과 코치들의 등번호 선택에도 조금씩 변화가 감지돼 팬들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지난 24일 LG 트윈스는 선수단 등번호 확정 소식을 전하며 유지현 수석코치가 6번을, 이병규 타격코치가 9번을 각각 달게 됐다고 밝혔다. 둘다 현역 선수 시절 달았던 등번호를 코치로도 다시 달게 됐다. 두 코치도 지난해까지는 기존 등번호 관례를 따랐다. 유 코치는 지난해 76번을, 이 코치는 91번을 달았다.
지난해 한화로 돌아온 ‘레전드’ 출신 코칭스태프들도 선수 때의 등번호를 그대로 달아 주목받았다. 한용덕 감독(40번)을 포함해 장종훈 수석코치(35번), 송진우 투수코치(21번)도 70·80번대가 아닌 선수 시절 번호를 되찾아 팀 분위기를 일신했다.
프로야구 초기에는 MBC 선수 겸 감독이던 백인천(2번), 황해도 출신 실향민으로 자신을 ‘38따라지’라 지칭했던 김동엽 전 해태 감독(38번) 등 코칭스태프도 작은 숫자를 달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이만수 전 SK 감독(22번)이나 이상훈 전 LG 코치(47번) 정도만이 관례를 피해 선수 시절 등번호를 택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코치를 중심으로 등번호에 변화를 주며 선수단에 팀 전성기 때의 분위기를 이식하려 애쓰고 있다.
또다른 변화는 투수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투수들은 ‘1번’이 아니면 보통 두자릿수 번호를 달았다. 각 포지션에 대응되는 숫자가 있는 야구의 특성이 반영됐다. 2번은 포수, 3~6번은 내야수, 7~9번은 외야수를 연상시키는 번호였다. 야구에 등번호가 도입된 초기에는 1~9번 타자가 자신의 타순에 해당하는 번호를 등번호로 달았다. 베이브 루스가 뉴욕 양키스에서 달았던 3번, 루 게릭이 달았던 4번도 그들의 타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 한 자릿수 등번호 투수들이 보이더니 국내 프로야구에도 몇 명이 변화를 줬다. 지난해 히어로즈의 제이크 브리검과 2017년 NC 소속이던 에릭 해커는 8번을 달았다. 지난해 삼성 우규민이 2번, 두산 이현승이 3번을 달았고, 올해는 LG의 새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가 3번을 택했다. 지난해 LG의 3번은 외국인 타자 아도니스 가르시아의 몫이었다.
등번호는 선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각 팀마다 전설로 남은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결번’ 처리하는 것도 등번호의 상징성이 크다는 증거다. 그러나 등번호를 자주 바꾸는 선수들도 있다. 이제는 두산의 대표 선수로 자리잡은 오재원은 타격폼만큼이나 등번호를 자주바꾸기로 유명했다. 48번에서 7번, 53번, 97번에서 지금의 24번으로 바꿀 때마다 오재원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사려는 팬들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올해는 오지환이 새 등번호로 심기일전에 나섰다. 이병규가 일본에 있던 2009년에 9번을 달고 데뷔한 오지환은 7번, 52번, 2번 순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미국의 명 유격수 데릭 지터의 등번호로 마음을 굳히는 듯 했던 오지환은 새해 10번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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