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소득 상위 20% 대 하위 20% 투표율 격차 ‘29%P’…OECD국 최악
ㆍ긴 노동시간·주거 불안 등이 “투표해봤자…”라는 정치 비관 낳아

김모씨(58)는 30년의 결혼 생활 도중 직장 일을 쉬어본 적이 거의 없다.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자녀를 키우고 시부모를 부양하기가 빠듯해 울며 겨자 먹기로 맞벌이를 해오고 있다. 김씨는 그간 수차례 투표해왔지만 올해 총선 투표가 내키지는 않는다. 그는 “투표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은데 각 후보나 정당에 대한 정보를 얻을 만한 길이 없으니 투표가 번거로워진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소상공인·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투표소에 잘 나가지 않는다는 주장은 정치권에서 정언(定言)처럼 통용돼 왔다. 실제로 한국의 소득 하위 20%의 투표율은 상위 20% 투표율에 비해 30%포인트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큰 수치다. 정책의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층의 의견이 선거에는 더 적게 반영되는 셈이다.




28일 OECD의 ‘더 나은 삶 지수 2015년판’ 자료를 보면, 한국의 소득 상위 20% 계층의 투표율과 하위 20% 계층의 투표율 격차는 29%포인트에 달했다. OECD는 ‘민주주의 및 선거지원을 위한 국제기구(International IDEA)’ 등이 집계한 OECD 회원국의 투표율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해 추정치를 산출했다. OECD 회원국들은 대부분 소득 하위층보다 상위층의 투표율이 높았는데, 그중 한국의 격차가 가장 컸다. 호주의 경우 소득 상위 20% 계층과 하위 20% 계층 간 투표율 격차는 2%포인트에 불과했다. 룩셈부르크(3%포인트), 덴마크(4%포인트), 스웨덴(6%포인트) 등 여타 유럽 국가들도 상위 소득과 하위 소득 간 투표율 격차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미국·영국(23%포인트), 독일(22%포인트) 등도 소득 상·하위 간 투표율 격차가 비교적 높았지만 한국에는 미치지 못했다. 

노동시간과 주변 환경이 저소득층의 정치 참여를 막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2년 18대 대선 후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49.6%가 ‘개인적인 일과 출근 등’으로 투표를 못했다고 답했다. 백화점이나 마트 등 서비스업이나 영세 제조업체 등에 종사하는 유권자는 선거일 투표시간에도 근무하고 대체투표에 대한 정보도 밝지 않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한국에서는 평소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며 “노동자와 정치의 접점이 많아지고 뽑으려는 후보가 있다면 시민들은 어떻게든 투표를 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의 주거 불안도 정치와의 괴리를 만든다. 전·월세를 전전하는 가구는 2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새집을 찾아 이동하게 되는데,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투표의 기준이 되는 지역구 현안에 어둡고 지역 정치인과 교류할 기회도 적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복지 등 정책 보호가 필요한 저소득층 의견은 선거에 적게 반영되고, 이 때문에 저소득층은 정치의 장에서 밀려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 교수는 “시민들이 보다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