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쌀용 쌀 수입을 둘러싸고 정부와 농민단체가 맞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교적인 문제를 들어 밥쌀용 쌀을 어쩔 수 없이 수입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농민단체는 국내에 쌀이 남아돌아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데 굳이 수입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반발했습니다. 일단 밥쌀용 쌀 3만t 수입은 확정됐는데, 추가 수입이 결정되면 반발이 한차례 더 거세게 일 것 같습니다.
■‘밥쌀용 쌀 의무 수입 조항 폐지’ 이후… 농민 “필요 없는 수입 왜?” vs 정부 “불가피한 선택”
정부는 지난 7월말 밥쌀용 수입산 쌀 3만t을 구매하겠다는 공고를 냈습니다. 정부는 “수입산 밥쌀용 쌀에 대한 국내 수요가 있다”며 “쌀 관세율 협상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입니다. ‘밥쌀용 쌀 의무 수입 조항’이 없어진 것은 한국이 올해부터 수입 쌀에 513%의 관세를 물려 수입하는 ‘관세화’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수입 쌀이 한국에 들어올 때는 원래 가격에 5배가 넘는 관세가 붙어서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국산 쌀이 수입 쌀에 비해서 비싸긴 해도 수입 쌀의 5배 정도까진 아니기 때문에 513%의 관세가 붙은 쌀은 국내에서 사실상 팔 수가 없습니다.
대신 수입산 쌀은 저관세할당물량(TRQ) 내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공식적으로 쌀을 수입할 때 513%의 관세를 물리고 있지만, TRQ 40만8700t 내에서만은 밥쌀용·가공용 관계없이 5%의 관세율을 매깁니다. 그래서 실제로 수입되는 가공용 쌀은 TRQ 물량 내에서 수입을 합니다. 정부가 수입을 결정한 밥쌀용 쌀도 TRQ의 일부 입니다.
현재 미국, 중국 등 5개국이 관세율 513%가 높다며 이의제기를 했습니다. 한국은 이의제기한 국가들과의 양자 협의를 하고 이에 관세율을 재조정 할 수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은 “밥쌀용 쌀을 전혀 수입하지 않으면 상대국이 이를 문제삼고 관세율을 내리려 하거나 밥쌀용 쌀 의무 수입을 다시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이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올해부터 ‘밥쌀용 쌀 의무 수입 조항’이 폐지돼 굳이 밥쌀용 쌀을 수입할 필요가 없는데도 정부가 수입을 결정했다는 게 이유입니다. 특히 지난해에는 풍작으로 쌀 생산량은 늘어난 가운데 가격이 떨어져 정부가 총 25만7000t을 수매하기까지 했는데, 밥쌀용 쌀 수입은 가격 하락을 부추길 우려도 일으킵니다.
■정부 “미국이 무역조항으로 이의제기 할 수 있다” vs 농민 “할 수 없다”
정부가 우려하는 바는 미국 등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3조 ‘내국민 대우’ 조항을 들어 이의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조항은 “수입된 생산품은 국내산 동종 생산품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수입산이 내국민들에게 국내산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정부는 수입산 밥쌀용 쌀 수입 자체를 막으면 미국, 중국 등이 “한국이 우리 밥쌀용 쌀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차별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농민단체의 해석은 다소 다릅니다. 밥쌀용 쌀 수입은 관세율이 싼 TRQ 물량 내에서 결정될텐데, TRQ에 밥쌀용·가공용 구분이 명시돼있지 않다는 겁니다. 최승환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밥쌀용 쌀 의무수입 조항이 삭제됐으므로 TRQ 물량은 용도에 관계없이 수입할 의무를 (상대국이) 수락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습니다. TRQ 물량의 총량은 40만8700t으로 정해져 있지만 밥쌀용, 가공용 구분이 없습니다. 즉, TRQ에 밥쌀용·가공용을 모두 포함할지, 전부 가공용으로 채울지는 전적으로 한국의 권한이며, 상대국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 이의제기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농민단체는 “우리가 상대국에 먼저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정부는 “무역 상대국 중에서는 한국의 밥쌀용 쌀 의무수입 조항 삭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부 “충분히 소통했다” vs 농민 “만나기만 했는데 소통이라니”
같은 조항을 놓고 양 측의 해석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간극을 좁히고자 양측은 대화를 시도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월 ‘식량정책포럼’을 꾸려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쌀 수입 문제를 정부와 농민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자며 정부가 구성한 기구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21일 열린 식량정책포럼 두번째 모임에서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과 농민 입장을 지지하는 이해영 한신대 교수,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농민단체는 “정부가 지난 7월 중순 첫 모임에서 ‘8월 모임에서 밥쌀용 쌀 수입에 대해 본격 논의하자’고 해놓고 7월말에 밥쌀용 쌀 수입을 결정했다”며 “정부는 농민단체들을 만나고 계속 소통했다고 강조하지만 만났을 때 논의된 것은 없다”고 합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수입이 불가피함을 설명했지만 농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연내 쌀 수입 시기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일단 수입은 결정… 얼마나 수입할지는 미정
어쨌든 밥쌀용 쌀 수입은 일단 결정이 됐습니다. 때문에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이제는 밥쌀용 쌀을 ‘수입하느냐 마느냐’에서 ‘얼마나 수입하느냐’로 논점이 옮겨진 겁니다. 지난해까지 의무 수입 조항 때문에 수입한 밥쌀용 쌀은 약 12만t입니다. 이 중 3만t 수입이 결정된 것인데, 지난해 수입량과 비교해보면 더 많은 양을 수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입쌀에 대한 수요 등 주변 상황을 지켜본 뒤 추가 수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추가 수입이 결정되면 농민단체가 또다시 반발할 것으로 점쳐집니다. 농식품부가 밥쌀용 쌀을 수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했지만, 얼마만큼 수입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장경호 녀름 부소장은 “정부가 수입량을 늘릴 때는 ‘내국민 대우’ 조항을 예로 들지 못하고 정확한 논리를 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국민 대우 조항은 밥쌀용 쌀 수입의 문을 열 때 쓰는 논리지, 수입량을 늘릴 때 쓸 논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꾸준히 밥쌀용 쌀 수입 반대 집회를 열고 있고, 전북도의회도 지난 22일 ‘밥쌀용 쌀 수입중단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정부의 결정과 설명에 따라 밥쌀용 쌀 수입 논란과 그 후폭풍은 더 크게 번질수도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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