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가 도복하더니 위조했다.”
생소할뿐더러 문법에도 맞지 않는 말 같지만 농촌에서는 쓰일 수 있는 문장이다. ‘수도’라고 하면 흔히 수돗물이나 하수도, 상수도에 쓰는 말(水道)로 생각하지만 농촌에서는 ‘논에 물을 대어 심는 벼(水稻·물 수+벼 도)’라는 말로도 쓰인다. 농촌에서 ‘도복’은 태권도나 검도 등 무예를 익힐 때 입는 옷(道服)이기보다는 ‘작물이 비나 바람에 쓰러지는 일(倒伏·넘어질 도+엎드릴 복)’이다. ‘위조’는 위조지폐라는 단어처럼 ‘속일 목적으로 진짜처럼 만드는 일(僞造)’이란 뜻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농촌에서는 ‘쇠약하여 마르다(萎凋·시들 위+시들 조)’는 뜻으로 이 단어를 쓴다. 앞선 문장은 “논에 심은 벼가 쓰러지더니 시들었다”는 뜻이다.
이같은 표현들은 보통 일제시대의 잔재이지만 농업 현장에서는 흔히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뿐 아니라 도시에서 귀농하는 인구들이 현장의 단어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공문서나 연구기관 발간자료들은 여전히 이 같은 한자로 된 단어들을 쓰고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은 오는 10월9일 한글날을 맞아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농업 현장에서 자주 쓰이는 농업용어 중 109개를 우선적으로 순화하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또 앞으로 매월 이달의 순우리말 농업용어를 5개씩 선정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 10월의 단어로는 ‘수도’, ‘도복’ ‘위조’와 함께 ‘시비’와 ‘천식’이 선정됐다. ‘시비’는 ‘시비를 건다’는 말처럼 ‘옳고 그름(是非)’이라는 뜻이 먼저 떠오르지만 농업 현장에서는 ‘거름주기(施肥·베풀 시+살찔 비)’라는 뜻으로 쓴다. ‘천식’은 기관지에 경련이 일어나는 질병의 일종(喘息)이라는 뜻과 함께 ‘(작물을) 얕게 심기(淺植·얕을 천+심을 식)’로도 써왔다. 농식품부는 ‘수도’는 ‘논벼’, ‘도복’은 ‘쓰러짐’, ‘위조’는 ‘시듦’, ‘시비’는 ‘비료주기’, ‘천식’은 ‘얕게심기’로 순화해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관정(管井)’은 ‘우물’, ‘한발(旱魃)’은 ‘가뭄’, ‘정지(旱魃)’는 ‘땅 고르기’, ‘관개(灌漑)’는 ‘물 대기’로 순화하기로 했다. 뜻이 반대되는 두 단어인 ‘한해(旱害)’와 ‘한해(寒害)’는 각각 ‘가뭄피해’와 ‘추위피해’로 바꾸고, ‘유료작물(油料作物)’은 ‘기름작물’, ‘엽채류(葉菜類)’는 ‘잎채소류’, ‘이앙기(移秧期)’는 ‘모내는 시기’로 바꿔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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