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취임 이튿날이 네루 50주기… 공식 추모식 안 열려
ㆍ‘엘리트 정치’와 거리 두며 “강한 인도 건설하겠다”
27일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취임 둘째날이자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 사망 50주기였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매년 열던 공식 네루 추모 행사는 없었다. 네루가 만든 국민의회당(INC)도 총선 대패의 후유증으로 추모 행사를 열지 않는다고 타임스오브인디아 등이 전했다. 이는 모디의 당선과 함께 독립 이후 인도를 이끌어온 ‘네루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류 평화의 대표자였다면 네루는 인도 정치의 상징이었다. 딸 인디라 간디와 외손자 라지브 간디는 총리를 지냈다. 라지브 간디의 아내 소냐 간디는 전 집권당인 국민의회당 대표를 맡고 있다. 네루-간디 가문 출신이 아닌 인도의 총리들도 네루를 답습했다. 모디 이전 유일한 인도국민당(BJP) 출신 총리인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는 언론인 출신 엘리트이며, 사상도 네루와 흡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매체 퍼스트포스트는 “영국 유학·국제주의·영국 정통 영어를 연상시키는 네루는 인도 정치인들의 원형이었다”고 평했다.
네루의 이미지뿐 아니라 가치관도 총리들에게 이어졌다. 네루는 냉전 시기 제3세계 비동맹주의를 이끌었다. 이후 인도의 외교 노선은 균형·실용주의에 근간을 뒀다. 또 서구에서 시작된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중앙정부는 국내의 성별과 카스트, 지역과 종교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려 했다. 만모한 싱 전임 정부도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보건·교육 개선 정책을 벌였다. 그러나 인도는 빈곤 문제를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 2010년 기준으로 인도의 하루 소득 2달러(약 2050원) 이하 빈곤층 비율은 68.8%(약 8억명)에 이른다.
연방 국가인 인도에서 중앙정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탓도 있었다. 하지만 차별이 일상화된 인도의 힌두교 문화와 네루 시대의 자유주의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칼럼니스트 산토쉬 데사이는 “모디는 국민들의 발전을 외치는 한편 문화 사이의 괴리로 발생한 다수 힌두교 신자들의 분노를 이용했다”고 평했다. 분노는 더뎌진 경제성장세, 강한 인도에 대한 기대와 맞물려 인도국민당의 총선 압승으로 이어졌다.
차 노점상 출신에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 모디는 네루와의 차별화 전략과 간디 껴안기 전략으로 총리가 됐다. 모디와 간디는 독실한 힌두교 신자이며, 두 사람 모두 서부 구자라트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네루의 공식 추모장을 찾지 않은 모디는 26일 취임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델리에 있는 간디 추모공원 ‘라지 가트’를 찾아 헌화했다. 선거운동 기간과 당선 직후에도 모디는 꾸준히 간디를 언급해왔다. “델리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그의 발언은 오히려 기존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모디가 간디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앞세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는 취임식에서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곁에 두고도 “강한 인도를 건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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