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0일, 한국외대 국제학대학원 김찬완 교수를 초빙해서 최근 인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었다. 김 교수는 총선이 끝난 뒤 인도를 직접 방문해 현지 분위기를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강한 인도'를 앞세우면서도 '실용주의자' 면모를 잃지 않는 나렌드라 모디라는 인물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다.[관련기사]



(ⓒisupportmodi.com)



 "총선에서 하원 543석중 282석 확보해 압도적으로 승리한 BJP는 '점령군' 분위기였다. 매번 가봤는데 다르더라. 이제 총선 승리의 떡고물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줄 서있다. 지방의 농민 단체 회장도 자신이 '모디의 승리를 도왔다'며 기웃거리더라. 그런데 이런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더라."


- 10년간 대규모 경제성장을 이뤘는데도, 국민의회당(INC)에 대한 여론이 왜 나빴는가.

"만모한 싱 정부 1기는 참 잘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집권한 2기가 문제였다. 2010년 영연방 경기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행사 관련한 비리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5만원이면 살 수 있는 선풍기를 10만원을 주고 빌려야 한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러면서 건물도 무너졌고.

 만모한 싱은 정치적 야망도 없고, 청렴결백한 사람인 건 맞다. 그런데 위가 깨끗해도 그 아랫사람들이 탁했다. 컨트롤이 안될 정도로."


- 싱이 행정, 경제 운영은 잘했는데, 그렇게 정치적으로 통제를 못했나.

"싱이 애초에 총리에 오를 때부터, 싱을 지목한 소냐 간디는 "정치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싱은 전문경영인으로 국가경영을 한 것이고, 정치는 소냐 간디가 뛴 것이다. 1기 때는 둘의 호흡이 잘 맞았다. 그런데 2기 이후, 소냐 간디가 비리를 잡지 못했다.

 그것은 싱이 차기 정부 집권까지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돌았던 게 컸다. 어차피 다음에 집권을 할 수 없으니, '해먹을 수 있을 때 해 먹어야'라는 인식이 관료,정치인들 사이에 팽배한 것이다. 이탓에 2G 통신회사 선점 비리, 광산 비리 등 대형 비리 스캔들도 여럿 터졌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등을 돌린게 컸다.

 그런데다 INC 정부의 '선심정책'도 문제였다. 헬기로 담요도 뿌리고, 쌀도 10분의 1가격에 주고, 비료도, 한 두가지가 아냐. 그런데 일자리가 없어. 정부에서 분배한다고 해도 중간에서 빼먹는 사람들도 있고. 1기 때는 성장이 좋고 분배도 좋았다. 2기에는 동반 성장 내걸었는데, 이상만 좋았다. "


- 그렇다면 정부의 분배에 어떤 문제가 있던 것인지.

 "분배와 동시에 경제도 부흥할만한 시스템이 있어야 했는데, 부패가 심각했다. 부패 과정에서 중간에 떼 먹었고. 그리고 분배를 지속적으로 하지 못했다. 중간에 분배가 끊기면 실망감이 생기고 경제 활성화 동력을 잃는다. 또 젊은 사람들이 무작정 받기만 하는 것을 싫어했다. 중산층도 하층민에 대한 무조건적 분배를 싫어했다. 그것도 질렸다. 농민들은 분배를 좋아했을지 몰라도 그 자녀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이들이 SNS를 쥐고 있었는데, 이들이 모디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모한 싱 정부 대신 자신들을 구제할 구세주를 바랐는데, 모디가 구자라트주에서 이룬 업적을 봐서는 구세주가 되겠구나 싶었다."

 "모디도 이를 지능적으로 잘 이용한 것 같다. 특히 바라나시에 출마한 것이 주효했다. 함께 나왔던 아르빈드 케지리왈이 오히려 모디에게 표를 쏠리게 하는 원인이 됐다. 이 과정에서 모디는 신격화됐고, 힌두 강성 7개주(힌두벨트)에서 압도적 지지 얻었다. 예전 같으면 선거 승리를 위해선 무슬림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해 '폭동하고 살해한다' 등 소문도 퍼뜨릴 법 했는데, 이번 선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선거 기간 내에 큰 일이 터질 것 같았는데, 그럴 새도 없이 모디와 BJP에게 몰표가 갔다.오히려 2002년 고드라 열차 화재 사건 때문에 모디에게 있던 우려를 불식시켰다."


- 당선된 지 한 달만에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은데

 "BJP는 선거 출구조사가 나오자 "새로운 인도가 탄생했다"고 했다. 그 순간 네가지 키워드가 생각났다. '힌두의 인도 - 성장의 인도 - 강한 인도 - 모디의 인도'"

 "힌두의 인도는 불가피하다. 모디도 그렇고 BJP 자체가 간디를 살해한 힌두 극우단체(RSS) 출신이다. 베다 시대의 철학을 교욱과정 삼는다는 등, 의도적으로 힌디만 쓴다는 등. 실제로 인도 방문했을 때도 힌두 인도가 됐다는 걸 느꼈다. 무슬림을 적으로 두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모디는 총리 취임식 때도 의도적으로 힌디로 연설했다. 재미있는 건, 해외에 나가 있는 인도인들도 힌두 인디를 바라고 있다."

 "중요한 건, 이제 64세인 모디가 단 한 텀만 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사회 전체에 자기 지지기반을 구축할 것이다. 자신의 최측근 아미트 샤를 BJP 대표로 세운 것도, 모디 중심의 '강성 힌두'로 조직 재편하겠다는 것. 그렇잖아도 BJP는 인도에서 조직화가 제일 잘 된 집단이다. 청년 힌두조직은 델리대 옆에 같이 합숙하면서 과격 행동 벌이기도 한다"


- 모디는 인도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모디는 오래 집권하려면 대다수 빈곤층의 손을 잡아야 한다. 하루 아침에 선심 정책을 멈추지는 못하겠지만, 서서히 줄여나가겠지. 당장 재정적자가 GDP의 5%다. 이것을 모디는 4.1%로 줄이겠다고 했다. 100만 일자리를 창조한다고도 했고. 모디는 어쨌든 구자라트 주지사 때 자신이 공언한 것들 중 80%는 해 왔다. 내부가 곪아터지든 어쩌든 보여주기는 한다.

 인도의 큰 문제는 농촌에서 도시로 오는 청년들이 직업을 얻지 못한다는 것. 한국과 중국은 도시 제조업이 농촌 잉여 노동을 흡수했으나 인도는 그게 안됨. 새로 인도에서 발전한 것은 IT 등인데, 영어도 해야하고, 단순 노동 자리가 아니다. 모디는 농촌에서 농산물 가공을 하게 하는 등 농촌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함"


- 인도 제조업이 약한 이유는?

"인도는 식민지 시기 겪으며 영국이 제조업 발달하지 못하게 됐다. 원료 공급 기지이자, 영국에서 제작한 공산품을 사는 시장으로 남게 됐다. 그러다가 간디가 물레를 돌리기 시작한 것. 대신 기형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무역은 발달했다. 서비스도 마찬가지. 

 그런데다 네루 가문이 45년간 정권 잡으면서, 소련을 모델로 삼아 중공업을 육성시켰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제조업이 낙후될 수 밖에. 철강 산업이 발달한 데 비해 제조업은 활성화되지 못했다. 고쳤어야 했지만, 제조업을 육성하려고 보니, 중국과 베트남, 방글라데시를 이길 수가 없게됐다. 그런데다 인도에서는 대기업이 제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막았고, 기술발전도 안되니 경쟁력이 안생겨. 결국 인도 자체적으로는 IT를 육성한거고, 제조업은 삼성 LG를 포함해 해외기업을 유치하게 된 것.하지만 그 자리도 도시 중산층들이 갔고, 농촌 주민들이 못갔다. 결국 농촌의 빈곤층의 일자리는 없던 것. '샤이닝 인디아'가 안먹히게 됐다.

 대신 모디는 대통령으로서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보여주기'에 용의한 건설을 많이하게 될 것. 구자라트에서 모디가 주로 한 게 그거다. 일반 국민들이야 GDP가 무엇인지도 모를거고, 도로, 건물이 올라가는 거 보면 달라진 게 보이지 않나. 다만 모디는 복지 정책은 못했지. 아마 한편으로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펼치고, 재정적자도 줄여나가려고 할 것이다. 일자리도 창출하고. 자기 조직 만드는 건 BJP에서 아미드 샤가 하겠지."


- 인도가 아시아에서 패권을 잡으려고 할까

 "모디와 BJP는 강한 인도를 내세웠다. 인도는 중국과 경쟁심을 느끼고 있어. 인도가 지금처럼 발전한 데는 중국 역할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다 인도는 1998년 핵도 공개했다. 국제 사회 제재당할 줄 알고도 한 거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단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제재를 두려워하는 대신 빈곤층까지 모든 계층이 강한 인도에 박수를 쳤다. 민족주의, 애국심, 굉장히 강하다."


-패권을 잡으려는 열망이 있었나.

 "딱히 그렇진 않지만, 파키스탄-중국과의 경쟁 구도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중요한 적이었으니, 강한 인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교육도 그랬고. 우리도 핵을 만든다고 했을 때, 그렇게 나빠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대신 실용주의 성장 노선을 하되, 상대가 국경 등 안보 문제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과거 분쟁지역을 침범했을 때, 모디가 가장 크게 흥분했다. 정부가 중국에 강경히 대응하지 못하냐면서. 물론 당시 모디가 총리 후보로 거론되면서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 모디가 인도 항공모함에 오른 것도, 강한 인도를 보여주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중국은 이제 만들기 시작했는데, 인도는 이미 항모를 보유하고 있던 게 자랑이었다."

 "재밌는 것은 아베와 매우 친해. (모디는 아베 공식 계정의 트위터 친구 3명 중 1명이라고) 또 모디가 일본 모델에 감명 받았다. 아베가 강한 일본 만들고 경제 성장 얘기했듯이, 모디도 똑같이 하겠다는 거다.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점도 둘 사이에 맞아 떨어진다. 미국도 강한 인도가 중국을 견제하니 좋아졌고, 미국에 일본에 호주까지 다 박수칠거다."


- 이제 인도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목소리를 키우지 않을지. 그렇다면 인도는 어디까지 목소리를 높이려 할까.

 "인도가 핵 보유 선언한 것을 미뤄보면, 그 정도는 불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베처럼 인도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 2001년 인도 국회의사당에서 폭탄 테러 일어났을 때 인도 동부에 있던 함대를 파키스탄까지 돌렸다. 전쟁 경험도 적지 않다. 정부도 "붙어보지" 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만 빈곤층도 잃을게 없다는 생각 갖고 있다."

 "인도인들은 무섭다. 사람을 때리면 잘못했다고 본능적으로 맞지 않으려 하는데, 인도는 때리면 더 때리라는 식이다. 한번 과격해지면 '저정도로 무서워질 수 있나' 싶다. 핵보유 선언, 카길 전쟁, 2001년 파키스탄과의 일촉즉발, 인도에 있을 때 다 경험해봤는데, 애들이 두려워하지 않다. 전쟁은 하지 않겠지만, 한다면 피하지 않을 것 같다. 최대 데칸 고원 위 인도 북부는 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 모디는 스마트한 것 같다.

"정치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모디 사진을 보면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본능적으로 정치적 감각이 있는 것 같다. 엘리트 출신은 아니지만 RSS에서 잔뼈가 굵어서 조직은 어떻게 만드는지를 안다. 민중을 잘 휘어잡는 인물을 볼 줄 안다. 칠 때는 과감히 치지만, 결속도 잘 시킨다. 예전 바지파이 때는 그를 견제할 인물(아드만)이 있었지만, 모디에겐 없다."


- 모디가 인도의 거버넌스를 바꿀 수 있을까.

 "인도는 공무원들을 잘 단속시키고 부패를 줄여야 한다. 모디는 그런 것들을 잘 한다. 모디가 정부 공무원들 방문한다고 하니, 알아서 칠하고 청소하고 했다고 한다. 모디는 구자라트주지사 때도 공무원들을 과감히 잘랐다. 로마 제국 같다. 자를 건 확실히 자르고 잘 따르면 상을 준다. 상벌이 철저하다. 구자라트 사태는 오히려 모디에겐 걸림돌이 아닌 자산이다.


- 무슬림들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슬림들도 모디에게 표를 많이 던졌다. 밥줄이 중요하다고 여겼으니까.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