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규모의 경제로 해결할 수 없는 도시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쪽 끝에 있는 카옐리샤는 흑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다. 케이프타운 외곽의 타운십(한국의 구와 비슷한 행정구역) 중 하나인 이곳의 주민 40만명 중 70%는 판잣집에 산다. 사망률이 매우 높아 인구의 75%가 35세 이하다. 젊은이의 4분의 1은 에이즈에 감염됐다. 케이프타운 최대 빈민촌이 있는 이 지역에는 마을을 지키는 농부들이 산다. 물을 얻으러 200m 이상 걸어야 하는 곳에서 농업은 사치같이 들린다. 하지만 이들의 농업은 마을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고향의 농부’라는 뜻의 시민단체 ‘아발리미 베제카야(Abalimi Bezekhaya)’는 1982년부터 빈민촌에서 텃밭농업 교육을 하고 있다. 이들이 텃밭운동을 시작한 것은 일자리가 없는 빈민들에게 살길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남아공은 농업대국이지만 급격히 산업화하면서 지역 공동체의 작은 농사일들이 없어졌다. 특히 인종분리 시기에 흑인 남성들이 도시와 광산의 노동자로 끌려가면서 농촌이 비게 됐다. 남아 있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러 대도시로 나갔다.
슬럼화된 도시 변두리에 남겨진 가족은 일하러 나간 식구가 돈을 보내오지 않으면 굶주릴 수밖에 없다. 텃밭을 가꾸면 당장 먹거리가 생기고 남는 작물을 팔 수도 있다. ‘아발리미’의 도움으로 주민들은 버려진 국유지와 빈터에 토마토와 당근, 감자를 심었다. 모종을 다루고 퇴비를 만들며 땅을 고르는 방법도 배웠다. 작물은 지역 학교와 주민들 사이에서 팔려나간다. 마을이 생산지이자 시장이 된 것이다. 이런 풀뿌리 농업공동체는 매년 3000명의 소농을 배출하고 있다.
일본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후쿠오카(福岡)현 야나가와(柳川)는 도심에 60㎞에 달하는 수로가 있어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을 모은다. 인구 8만명의 이 소도시는 주변 농어촌 마을과 수로로 이어져 있다.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가 야나가와 운하를 선진 관광 사례로 선전하기도 했지만, 사실 이곳은 개발논리에 사라질 뻔했던 물길을 주민들이 지켜내 도시를 되살린 대표적인 사례다. 1960년대 화학비료 사용이 늘면서 야나가와의 수로는 오염수로 가득 찼다. 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하자 콘크리트로 수로를 덮어 도로나 주차장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1977년 수로를 메워버리는 계획이 확정됐다.
하지만 도시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역 생태계와 밀접히 연결된 수로를 메우면 재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물길을 없애는 대신 되살리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시의회는 수로 준설과 오염수 관리로 방향을 틀었다. 주민들은 수로에서 고기를 잡고 헤엄치던 추억을 전하며 ‘물이 있는 삶’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년간 100차례 넘는 간담회를 열었고, 200개 주민모임이 수로를 71개 구간으로 나눠 각자 책임을 맡기로 했다. 주민들은 그 후 1년에 한 번씩 수문을 닫고 강바닥을 청소한다. 수향(水鄕) 야나가와는 이렇게 부활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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