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의 중심산업이 바뀌면 쓸모를 잃은 건물들이 남는다. 폴란드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시 우츠가 그랬다. 우츠는 19세기 ‘폴란드의 맨체스터’라 불릴 정도로 섬유공업이 발달했다. 하지만 20세기 전쟁과 산업구조 변화의 영향으로 섬유공업이 몰락하자 공장 건물 300여개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경공업의 특성상 공장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다른 공장으로 용도를 바꿀 수도 없었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공장 대부분이 방치됐다.

우츠는 1997년 경제특구로 선정된 후 도시 재정비에 착수했다. 공장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우츠시 투자자협력기구의 카밀라 마키비츠는 “옛 섬유공장들은 우츠의 산업발전사를 보여주는 유물이자 도시에 옛 정취를 불어넣는 건물이기 때문에 철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폐섬유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폴란드 우츠의 쇼핑몰 ‘마누팍토라’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우츠 | 남지원 기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공장들은 아파트와 호텔, 레스토랑, 쇼핑센터로 탈바꿈했다. 1906년부터 2000년까지 화력발전소로 쓰였던 곳은 ‘EC1’이라는 이름의 문화센터로 변신해 올가을 개관한다. 우츠 중심부에 있는 마누팍토라는 폴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쇼핑몰인데, 이곳 역시 한때 섬유공장이었다. 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들은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폐공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아파트의 임대료나 레스토랑의 음식값은 다른 곳보다 비싸다. 공장 건물에 들어선 호텔도 관광명소가 됐다.

한국보다 앞서 탈산업을 경험한 유럽 도시들 중에는 옛 공장이나 창고를 허무는 대신 재활용하는 방향으로 도시재생 계획을 세우는 곳들이 많다. 오래된 건물은 어떤 종류든 그 자체로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 남동쪽 베르시에는 2001년 문을 연 ‘베르시빌라주’라는 쇼핑몰이 있다. 이곳은 19세기까지 부르고뉴와 보르도에서 생산돼 온 와인을 전국으로 보내는 물류창고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교통이 발달하고 소비자들이 생산지에서 직송된 와인을 찾게 되면서 쓸모를 잃게 됐다.

파리는 1990년대 베르시 지구를 재개발하면서 버려졌던 와인창고들을 고풍스러운 쇼핑몰로 재탄생시켰다. 19세기에 깔린 돌바닥과 와인 운송용으로 쓰이던 기차 레일들도 그대로 뒀다. 스페인 빌바오도 30여년간 방치됐던 와인창고를 주정부가 인수해 2010년 시민 문화센터로 변신시켰다. 옛 창고의 외벽만 남기고 내부는 완전히 바꿔 극장과 도서관, 헬스센터, 수영장, 전시장을 배치했다. 한국에서도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2012년 개관한 서울 종로구의 윤동주문학관 등 비슷한 시도가 늘고 있다.

<우츠·파리·빌바오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