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7월이 됐다. 여름휴가 시즌이 왔다. 괜히 지난 겨울의 기억을 더듬어보게 됐다. 지난 겨울휴가도 물론 좋았지만 휴가보다 앞서 3개국을 다녔던 지난 '도전하는 도시' 기획 취재가 떠올랐다. 취재일지와 함께 직접 본 이국적인 풍경들을 함께 남기려고 마음먹었건만 인도 오로빌 외 두 곳은 엄두조차 못냈다.


문득 케냐의 초원이 떠올랐다. 앞으로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초원을, 반드시, 꼭 다시 남겨서 추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뒤져봤다. 안타깝게도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동행한 사진기자 선배가 좋은 사진을 남기실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다만 정작 '내 것'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그나마 건져놓은 사진 몇 장으로 케냐를 떠올려 보려고 한다. 케냐를 '아프리카의 한 나라' '동물의 왕국'이라는 진부한 표현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다.




GLOWING RADIANT SKIN ALL DAY LONG. 오른쪽 광고판에 쓰인 문구다. 해석하면 '빛나는 피부를 하루 종일(유지하세요)' 정도 되겠다. 글로벌 브랜드인 니베아 광고판은 나이로비 시내 한가운데도 서 있었다. 현지 유명 모델인듯한 '언니'와 함께. 사실 나이로비 도심에는 꽤 세련된 건물이 많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 본부도 있고 유럽인들이 동아프리카 진출 때 거점을 삼았던 곳이기도 해서 그렇다.


그런데 사진을 잘 보면(아마 잘은 보이지 않겠지만) 저 광고판에 나온 니베아 로션의 용기에 'COCOA BUTTER'라는 글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케냐 사람들은 대개 흑인이니까. 그들에게 빛나는 피부는 '코코아 버터색' 피부인거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긴 한데,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라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황인종에 속하는 한국 사람들이 쓰는 니베아 스킨 로션 중에 '흰색'은 있어도 '상아색'은 있었나 싶다. 그래서 '빛나는 코코아 버터'가 더 낯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코코아 버터 색은 하얗더라... 물론 광고 속 니베아 로션 색은 우리가 아는 초콜릿 색인 것같다.)




한 당국자와의 인터뷰를 기다리면서 찍은, 나이로비 도심의 원형 교차로다. 주변에 꽤 높은 건물들이 보인다. 나이로비는 생각보다는 꽤 많이 현대화된 도시였다.


원형 교차로는 한국에서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사거리에서는 신호등보다 원형 교차로가 교통 흐름을 더 원활히 해 준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다. 나이로비에는 사거리에 대부분 원형교차로가 위치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통 흐름은 전혀 원활하지 않았다.


전에 방글라데시와 인도를 방문했을 때도 엄청난 교통체증에 숨이 턱턱 막힌 적이 있다. 다만 그 나라들에는 신호등이 많이 없다. 나이로비엔 신호등아 교차로마다 있었다. 그런데도 교통 경찰들이 차량 흐름을 시원찮게 통제해 흐름이 원활치 않았다.


신호등은 있지만, 차량과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교통 경찰이다. 교통 경찰이 차를 막고 보행자를 지나가게 하는데, 그들은 신호등의 빨간불 파란불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신호등이 파란불이어도 경찰이 막으면 못가는 거다.


문제는, 경찰이 적절히 차로를 통제해주면 좋은데 그게 아니란 거다. 경찰이 한 차로를 10분 이상 막는 경우가 생긴다. 그 기준은 알 수 없다. 결국 영문도 모른채 내가 찬 타가 10분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그렇다면 경찰에게 이의제기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지 교민들은 '뒷자리 안전벨트 미착용 등을 트집잡아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게 줄 돈이 없다면, 기다리는 수 밖에.




주말을 맞아 찾아간 나이로비 '헬스 게이트(Hell's Gate) 국립공원'의 화산 지형. 용암이 흘러간 자리에 형성된 협곡, 건기를 맞아서 직접 걸어볼 수 있었다. 선배 기자가 찍었다는 '좋은 사진'은 아래 링크에서 감상하시길. 

[PhotoNote :: 마사이족과 협곡을 걷다]


이곳도 나름 유명관광지였나보다. 사진 속, 용암이 흘렀던 흔적에 여러 나라의 말로 낙서가 쓰여있다. 그걸 보니 괜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한국어 낙서가 있지 않을까. 에이, 설마. 이 먼 케냐에까지 있겠어?'


웬걸, 있었다.




물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다. 한글로 쓴 낙서가 왜 '러시아' 일까. 옆에 RUSSIA라는 영문도 보이고, 러시아 사람이 한글을 배워서 괜히 한 번 써본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런데 낙서하는 사람이 한국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거다.




'한글'하니까 생각나는 기억 하나 더. 노란색으로 '금바우'라고 쓰인 한글이 있었다. 시선을 간판으로 돌리면 알게 되겠지만, 가게 이름이다. 옆 가게 디스플레이 된 거나 분위기나 한국의 시외버스 터미널 느낌이 난다. 벤치에 앉은 사람들과 가게 외벽까지의 거리를 통해 보듯 복도가 좁은 것도 그렇고.


장소의 정체는 같은 곳에서 잠시 뒤 찍은 다른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다.




Transit 옆에 있는 노란 네모 안 그림은 이륙하는 비행기 그림이다. 그렇다. 작은 터미널 같은 이 곳은 사실 나이로비의 국제공항인 조모 케냐타 공항이다. 이곳은 케냐의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의 이름을 따 만든 곳으로 외국에서 케냐를 통하는 제일 관문이다. 하지만 한국어가 쓰인 작은 가게가 들어서 있어 국제공항이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서 타고 내린 중동(카타르와 UAE) 국적 비행기들의 서비스는 참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공항에서 내렸을 때의 시원한 기후도 기억에 남는다. 비교적 높은 고원에 위치한 나이로비는 저녁 시간만 되면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나이로비에서의 가장 신선하고 기분 좋은 추억이다. 그곳을 언제까지 추억할 수 있을까. 곁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꺼내어 보고 싶은데 말이다.




Posted by 윤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