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애플이 출시한 최신 스마트폰 ‘아이폰6’, ‘아이폰6+(플러스)’, ‘애플 워치’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스마트폰 신제품이 발표될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스마트폰의 생산과 폐기 과정에는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다. 사실 스마트폰 부품에 쓰이는 원료는 대부분 아프리카 중부 군사조직의 ‘자금줄’인 ‘분쟁 광물’이다. 또 부품 공장의 노동자들은 유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일하면서도 합리적인 수준의 임금은 받지 못한다.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생산·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정 무역’ 개념을 스마트폰에 적용한, ‘공정한(fair) 전화(phone)’가 지난해 5월 첫선을 보였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기업 페어폰은 회사명과 같은 이름의 스마트폰 ‘페어폰’을 지난해 2만5000대 팔았다. 올해도 3만5000대를 생산해 판매할 계획이다.
공정무역 개념을 적용해 지난해 첫선을 보인 ‘페어폰’
페어폰의 창업자 바스 판 아벨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우리는 스마트폰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회사 설립 취지를 밝혔다. ‘착한 스마트폰’인 페어폰은 제품을 만들고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구리, 철, 알루미늄, 니켈, 텅스텐, 탄탈룸…. 스마트폰의 회로와 부품에 쓰이는 광물은 40가지가 넘는다. 이 가운데 부품 경량화에 쓰이는 탄탈룸은 스마트폰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그러나 텅스텐과 탄탈룸은 대표적인 ‘분쟁 광물’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기도 하다.텅스텐과 탄탈룸, 주석(Tin)과 금(Gold)은 대표적인 분쟁 광물이다. 이른바 ‘3TG’로 불린다.
내전 지역 피묻은 ‘분쟁 광물’은 이제 그만
이 광물들은 주로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채굴·생산된다. 문제는 민주콩고의 정부군과 반군·무장세력이 광산업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분쟁 광물을 팔아 그 수익으로 무기를 사들였다. 군사조직들은 이를 기반으로 1998년부터 내전을 벌였다. 내전은 지난해 11월 일단락됐지만 그동안 약 540만명이 숨지고 수많은 여성들은 성적 학대를 당했다. 이 때문에 민주콩고의 내전은 풍부한 광물 때문에 벌어진 ‘역설적 비극’으로 평가받고 있다.
분쟁 광물 사용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2010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해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은 흔히 금융개혁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법안에는 전자기기 제조업체들의 분쟁 광물 사용 규제안도 포함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상장된 글로벌 브랜드와 제조·하청업체들은 SEC에 분쟁 광물 사용 실태를 보고해야 한다. 또, SEC가 규정한 분쟁 광물을 제품 생산에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분쟁 광물에 대한 의존도가 큰 탓에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환경 컨설팅업체 클레이건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분쟁 광물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SEC에 밝힌 업체는 대상 업체의 6%에 불과했다.
그러나 페어폰은 분쟁과 무관한 광물을 사용하고 있다. 민주콩고 현지를 직접 방문해 군 조직과 무관한 주석·탄탈룸 공급처를 개척했다. 페어폰은 장기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 수준 향상, 광산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권리 신장까지 목표로 삼고 있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사례는 첨단기기 부품 생산에 얼마나 많은 독성물질이 쓰이는지를 일깨워줬다. 스마트폰 부품 생산 과정에도 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들이 쓰인다. 미국 환경·소비자단체인 그린아메리카는 중국 내 애플 납품업체 노동자 150만명이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암, 백혈병, 간·신장 질환 및 신경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미 환경청(EPA)이 분류한 물질들이다. 그린아메리카는 노동자들의 유해물질 노출을 막는 데 생산업체가 들이는 비용은 기기 한 대당 불과 1달러라고 지적했다.
노동 환경을 위해 생산업체와 관계 개선
글로벌 브랜드-생산업체 간의 수직적인 관계도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방해한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생산업체들이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줄고 노동시간은 늘어난다. 생산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생산업체들에 노동 인권은 뒷전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저임금·과노동’을 방조하면서, 노동 인권 보장과 적정 임금 지급은 생산업체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미국 인권단체 낫포세일이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인 전자제품 글로벌 브랜드 39곳 중 노키아만이 생산업체 공장 노동자들에게 ‘생활 임금’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폰을 생산하던 대만 업체 팍스콘의 중국 공장에서는 저임금과 취약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2009년부터 연쇄 자살을 하기도 했다. 페어폰은 노동 인권 보호를 위해 ‘관계’를 중요시하겠다고 밝혔다. ‘저비용 대량생산’이 가능한 업체를 일방적으로 선정하는 대신, 생산업체와의 관계를 증진하는 데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생산업체를 선정할 때는 기술 수준뿐 아니라 사회·환경 공헌도를 살피겠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복지에 얼마나 투자하는지, 그리고 활동 내역을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도 선정 기준이다.
전체 산업 구조가 단번에 바뀌진 않겠지만, 한단계씩 기업간 관계를 바꿔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페어폰의 구상이다. 그 일환으로, 페어폰은 ‘노동자 복지 기금’을 조성했다. 페어폰 한 대당 5달러인 기금은 페어폰과 중국 생산업체가 2.5달러씩 지불해 조성했다. 지난해 생산한 페어폰 2만5000대가 모두 팔려 12만5000달러가 기금으로 모였다.
페어폰은 지난 6월 기금 사용 방안을 논의할 ‘노동자 대표부’를 중국 공장 노동자들의 투표로 선출하도록 했다.
전자제품에는 금속 부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폐기될 경우 필연적으로 중금속 쓰레기가 생긴다. 미국에서 매립되는 유해 중금속 폐기물 중 70%가 전자제품 폐기물, 이른바 ‘e쓰레기’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신기술을 탑재한 전자제품이 나타나면, 앞서 생산된 제품은 곧바로 폐기물이 됐다. 신기술의 집약체인 스마트폰은 제품 교체 주기가 빠르다. 그만큼 매년 버려지는 스마트폰 양도 적지 않다. 미 환경청은 2009년 미국에서 수명이 다한 휴대 전자기기(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폰, 개인휴대단말기 등)가 총 1억4100만대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재활용된 기기는 1170만대로, 8%에 불과했다.
부품 교체해 오래 쓰고 폐기물은 재활용
e쓰레기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미국·영국을 중심으로 휴대폰 재활용이 시작됐다. 미국의 경우 환경청이 나서 버려질 휴대폰을 수거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낡은 폐휴대폰 구매업체가 2010년 처음 등장한 이래 2014년 현재 100여곳까지 늘었다. 문제는 아직 개도국에선 스마트폰 재활용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미국에서 발생한 스마트폰 폐기물이 화물선을 통해 중국이나 인도, 아프리카 가나에 버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이폰에 쓰이는 프탈레이트 등 독성 화학물질은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 환경청은 휴대폰 100만대를 재활용하면 구리 1만6000㎏, 은 350㎏, 금 34㎏을 얻어낼 수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평균 수명을 늘리는 것은 페어폰의 설립 목적 중 하나다. 이 때문에 페어폰 측은 “쓰고 있는 휴대폰이 있다면 (굳이 페어폰을 사지 말고) 그냥 쓰라”고 권한다. 페어폰의 경우, 부품을 별도로 판매하고, 고객이 직접 설명서에 따라 교체·정비하도록 한다. 부품 하나가 고장 나서 휴대폰 전체를 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페어폰은 e쓰레기 근절을 위한 활동도 함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네덜란드 환경단체 ‘클로징 더 루프’와 손을 잡고 가나에서 버려진 휴대폰 7만5000대를 수거해 벨기에 재활용업체에 보냈다. 페어폰은 지난해 벌어들인 수익을 바탕으로 지난 2월 가나 현지를 직접 방문해, 현지 주민들이 버린 휴대폰을 수리해주기도 했다.
페어폰은 아직 한국에서 직접 구입할 수는 없다. ‘저임금·과노동’에서 비롯되는 기존 글로벌 브랜드 생산 체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소량 생산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페어폰은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는 대로 제품을 생산한다. 연간 생산량도 3만5000대로 못박았다.
이 때문에 페어폰을 주문한 뒤 제품을 받아보는 데 최장 6주가 걸린다. 직접 배송이 가능한 지역도 유럽으로 제한돼 있다. 페어폰 수천대가 중국 충칭(重慶)에 있는 공장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사로 운송되면, 본사 직원 30명이 유럽 각국으로 보낼 제품들을 분류한다. 대신 페어폰은 웹사이트를 통해 생산 소식과 배송 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이 같은 방식으로 지난 7월부터 지난 12일까지 페어폰 2만640대가 팔렸다. 지난해 판매량의 80%가 넘는 수치다.
페어폰의 사양은 애플, 삼성 등 글로벌 브랜드의 최신 스마트폰에는 못미친다. 하지만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했음에도 가격이 310유로(약 42만원)에 불과하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운영체제(OS)로는 페어폰 전용 안드로이드 체제가 쓰이는데, 이를 개발한 기업 역시 영국의 사회적 기업인 콰미코프다.
한국에선 직접 구입 못해
공정한 스마트폰을 꿈꾸지만,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바스 판 아벨은 “아직 100% 공정한 스마트폰은 아니다”라며 아쉬워한다.
판 아벨은 지난달 온라인매체 그린비즈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분쟁과 무관한 광물을 공급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아동 노동문제까지는 당장 해결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곳은 그랬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서아프리카 에볼라 퇴치에 3천명 파병키로 (0) | 2014.09.17 |
---|---|
C형간염 환자들에 값싼 복제약 풀린다 (0) | 2014.09.16 |
스피노사우루스, 물에서도 생활했다“ (0) | 2014.09.12 |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기소 말라” 국경 없는 기자회 성명 (0) | 2014.09.09 |
컨테이너 속에 아프간 난민 35명이··· 영국서 발견 (0) | 2014.08.19 |